무등일보

디케의 눈이 가려진 이유

입력 2018.06.03. 15:30 수정 2018.06.03. 15:31 댓글 0개

‘디케(Dik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법(法)과 정의(正義)의 여신이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아스트라이어스의 딸인 ‘아스트라이어(Astraea)’와 동일하며 로마 신화의 ‘유스티티아(Justitia)’에 해당된다.

여신 디케는 헝겊으로 눈을 가린채 한손에 칼이나 법전(法典),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눈을 헝겊으로 가린 이유는 인간 세상에서 재판을 할 때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으로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다. 칼이나 법전을 들고 있는 것은 법(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해석해 집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울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데 있어 편견을 버리고, 공평해야 함을 강조하는 법과 정의의 잣대다.

우리 대법원 앞에도 여신 디케(아스트라이어)의 조각상이 서있다. 눈을 가리고 법전과 저울을 들었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의복인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정의를 곧추 세워야 할 대법원이 혼란 상태에 빠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이 박근혜의 BH(청와대)와 거래 아닌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양 전 대법관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조사보고서가 충격파를 던졌다. 보고서에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법원행정처를 통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담겼다.

원세훈 국정원장 판결 선고나 집단해고된 KTX 승무원들의 소송, 과거사 국가 배상,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정지 등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법원이 이들 소송의 최종심 재판 진행과 선고에 관여해 당시의 청와대 의중에 맞는 판결을 유도하고 숙원인 상고법원 의 입법을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초유의 ‘사법 농단’이 아닐 수 없다. 의심할만한 구석은 있다. 1, 2심 승소에 이어 대법원 승소를 굳게 믿었던 KTX 해고 승무원들 최종심 패소 결정에 넋을 잃고 말았다. 과거사 국가배상,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최종심 결과도 일반인의 범감정이나 정의와 상식에 비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논란의 확산에 침묵해오던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재판 거래는 결단코 없었다. 그런 얘기는 법관을 모욕하는 행위다”며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강하게 밝혔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정의가 훼손된 곳에 재앙을 내린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밝힌 내용이 사실이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헌법과 법률, 양심을 져버려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법 농단’으로 디케가 던지는 재앙의 불칼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디케가 굳이 헝겊으로 눈을 가린 이유는 가장 공평하고 객관적이며 정의로워야 할 재판과 판결을 강조하기 위함일 터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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