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민선 7기, 이번엔 우(愚)를 범하지 마라

입력 2018.05.23. 19:29 수정 2018.05.23. 19:45 댓글 0개
박석호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장

2002년 독일경제는 ‘통일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률은 올라갔다. 그런데 슈뢰더 총리는 실업수당 수령 기간을 32개월에서 12~18개월로 줄인 반면 연금을 받는 시기는 65세에서 67세로 늘렸다. 당연히 반발이 심했고,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슈뢰더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메르켈 정책’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자의 좋은 정책도 책상 서랍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국가 경제발전 전략은 180도 바뀐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창업 지원 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으로 변경됐고 이명박 정권은‘녹색성장 국가전략’을 들고 나왔지만 박근혜 정권은 ‘창조경제’로 말아먹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창조’라는 말이 경제에서 사라졌다. 경제정책 로드맵의 수명이 대통령 임기와 같은 5년에 불과하다 보니 겨우 자리잡을만 하면 없어지고 다른 정책이 나왔다가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저 전임 정권의 흔적 지우기로, 합당한 이유나 타당한 설명도 없다. 일관성과 연속성 없는 경제정책으로 경제인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은 나오지 않고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쁜 것은 빨리 배운다’는 말처럼 지방정부도 중앙정부를 그대로 따라한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수천억원이 투입된 광산업을 주력산업으로 내세웠지만 이어 등장한 강운태 시장은 문화콘텐츠산업을 들고 나왔다. 윤장현 시장은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건설과 광주형 일자리를 핵심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들 전략산업들이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근본적인 이유는 열악한 지역 경제환경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취약한 산업구조와 인력, 자본력 등으로 지자체 주도의 주력산업 육성이 한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지방정부의 일관성과 연속성 없는 경제정책이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지방정부도 글로컬시대를 맞아 중앙정부처럼 세계경제 흐름과 지역여건에 맞는 주력산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정부가 잘못한 정책은 폐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과거 정부와의 단절에만 얽매여 정확한 평가와 분석 없이 경제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의 경박함’은 자원배분에 왜곡이 생기고 민간기업의 투자의욕을 상실시켜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방정부는 ‘소신의 유연함’도 답습한다. 좋게 말해 유연함이지 ‘소신의 부재’에 가깝다. 박 시장 때 시작된 어등산 개발사업은 10년 넘게 진행형이고 강 시장 때 추진된 신세계 복합시설 건립사업은 윤 시장 때 시민단체와 일부 소상공인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지하철 2호선 건설 등 지역 대형현안사업들도 지지부진하다. 대표적 사례인 신세계 복합시설 건립사업을 보자. 신세계는 지난 2015년 6천억원을 투자해 특급호텔과 면세점 등을 포함한 복합시설물 건립사업을 제안했다. 그 동안 지역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적됐던 특급호텔과 면세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호기였다.

하지만 인근 소상공인들과 시민단체, 정치권의 반대로 몇년째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의 중재 노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정책으로 혼선만 빚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한 뒤 소신있게 정책을 결정하고 현안사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지자체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민선 7기 지방정부가 오는 7월 출범한다. 이번 민선 지방정부는 지방분권 시대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중대한 업무를 안고 있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진다. 지방정부의 잘못된 결정은 지역경제를 후퇴시키고 지역민의 삶을 팍팍하게 한다. 4년 마다 바뀌고 소신도 없는 정책을 믿고 어느 기업인이 투자를 하고 중장기 발전 전략을 세우겠는가. 지방정부 경제정책도 일관성과 함께 소신이 있어야 한다. 한번 결정된 정책은 과감히 밀어붙일 필요도 있다. 과거 지방정부가 추진한 사업이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누구의 공일까? 민선 7기 지방정부가 과거 지방정부의 우(愚)를 다시 범하지 않길 기대해 본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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