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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벌래 음향효과전문가 별세, 향년 77…소리 창작의 대가

입력 2018.05.21. 18:43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음향의 달인', '광고 소리의 대부'로 통한 김벌래(77·김평호) 씨가 21일 새벽 3시16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한국의 효과음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다.

고인은 애초 연극배우를 꿈꿨다. 고등학생 때 연극계에 뛰어들어 손에 잡히는 대로 잡일을 했다. 예명인 '김벌래'는 당시 연극계 거목 이해랑(1916~1989)이 지어준 별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왜소하지만 부지런한 습성을 지닌 김평호를 김벌래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고인이 벌레를 벌래로 고쳐 썼다는 것이다.

1962년 동아방송국에 '효과맨'으로 입사하면서 음향 일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까지 소리 2만여 편을 만들었다. 특히 1970~1980년대 광고·방송·공연·이벤트 분야에 사용된 효과음의 90% 이상이 그의 손을 거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대를 대표하는 효과맨이었다.

무엇보다 괴짜 기질을 발휘해 독특하고 다양한 소리를 탄생시켰다. 맥주병을 따는 '뻥' 소리, 치약 광고에서 이를 닦는 '뽀드득' 소리, 유명 피로회복제의 병마개 따는 소리 등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지금까지 회자되는 소리는 콜라 병마개를 딸 때 나는 '펩!'이다. '쉭쉭'이라는 효과음이 동반된 이 기분 좋고 상쾌한 소리는 사실 콘돔을 이용해 만들었다.

김벌래는 과거 인터뷰에서 "고무풍선을 터뜨려 만들었는데 재질이 약해 무용지물이었다"면서 "그래서 고안해낸 게 콘돔이었다. 그걸 두 겹, 세 겹 겹쳐 해보니, 그럴싸한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이 효과음으로 당시 콜라회사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은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애니메이션 '로봇 태권V' 음향 작업도 맡았다. 86아시안 게임, 88서울올림픽, 2002월드컵, 대통령 취임식 등 대형 이벤트의 사운드 연출·제작으로 성가를 인정받았다.

고졸 학력이지만 실력과 경력으로 서울예대 광고창작학과 강사,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2007년 펴낸 '제목을 못 정한 책'에서 학벌 위주 사회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KBS 2TV 드라마 '눈의 여왕'(2006)에서 배우 현빈이 연기한 '한태웅'의 스승인 괴짜 '천 교수' 역으로 연기도 했다.

부인 황경자 여사와 아들 김태근(삼팔오디오 대표이사)·김태완(삼팔오디오 이사)씨를 남겼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 23일 오전 8시, 장지 서울추모공원, 02-3010-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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