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80년 5월 광주서 행방불명된 7살 이창현군

입력 2018.05.17. 14:35 수정 2018.05.17. 15:39 댓글 0개
오늘 기념식서 시네라마 형식으로 사연 공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5·18 행방불명자 이창현군(당시 8세)의 사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18 당시 행방불명된 창현군과 그 아버지 이귀복(82)씨의 사연이 18일 5·18 기념식에서 시네라마 형식으로 재연된다.

창현군은 1980년 5월 19일 화장품 외판원을 하던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에 집을 나섰다.

당시 건축업자였던 창현군의 아버지 이씨는 건축공사 때문에 완도에 있었다.

이씨는 5·18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초등학생인 창현군이 아들이 집을 나간 뒤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들었다.

이씨는 아들을 찾으려했으나 광주가 봉쇄되면서 뜻대로 하지 못했다. 나머지 가족들도 창현군을 찾기 위해 나서려고 했지만 군인들이 밖에 돌아다니면서 거리로 나가지 못했다.

도청 앞에서 만난 군인들에게 아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행방을 묻기도 했지만 군인들은 “집에 있는 자식관리나 잘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두려움에 떨며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남은 자식들을 보살폈다.

이후 이씨는 생업을 팽개치고 아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부인은 생활고에 집을 떠났다.

이씨는 1989년 5·18 유족회가 발간한 ‘광주민중항쟁 비망록’이라는 책에서 총상을 입은 채 숨진 아들의 사진을 본 뒤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10년이 넘게 시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어디든 찾아갔지만 끝내 아들을 찾지 못했다.

창현군은 결국 1994년 창현군은 행불자로 등록됐다.

1997년 5월 4일 국립 5·18 민주묘지 내 행불자 묘역에 창현군의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이 군의 넋을 위로하는 ‘이창현 군의 령’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묘비 뒷면에는 ‘7세의 나이로 학교를 다닌 지 2개월 만에 M16 총상·공수부대·내 아들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국가보훈처는 5·18기념식 기념공연에서 이들 부자의 사연을 영화와 드라마를 결합한 장르인 시네라마 형식으로 18분 동안 전달할 계획이다.

‘못다 핀 꽃 한송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씨가 공연에 직접 참여, 사연을 공개한다.

유대용기자 ydy21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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