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직장내 갑질 청산, ‘내탓이오’가 출발점이다

입력 2018.05.16. 16:42 수정 2018.05.16. 16:55 댓글 0개
윤승한의 약수터 무등일보 지역사회부장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 파문이 일파만파다. 이명희씨의 비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갑질 논란이 한진 총수 일가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뒤늦게 수습에도 나서봤지만 되레 진정성 논란으로 역풍만 맞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갑질이 불러온 충격파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점입가경이다. 이쯤되고 보니 집안 내력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참다 못해 문재인 대통령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갑질 문화를 채용 비리와 함께 국민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공공이든 민간이든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상대를 무시하거나 인격모독을 가하거나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하는 것은 이제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에 맞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관계기관에서 한진 총수 일가에 대한 갑질 수사와 함께 각종 불·탈법 비리행위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갑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정 계층이나 특정 조직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미 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단지 보고도 못본 체, 알아도 모르는 체 할 뿐이다. 내가 당한 갑질에 대해 다시 보복 갑질을 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재벌 갑질도 갑질이지만 특히 직장내 갑질은 악질적이다. 갑질 상사 얘기다.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질기다. 과중한 업무보다 더 직장인을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지난달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내놓은 설문 결과가 흥미롭다. 직장인 898명을 대상으로 ‘갑질 상사 유형’을 조사한 것인데, 무려 97%의 직장인들이 상사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10명 중 거의 10명꼴이다. 그만큼 직장내 갑질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반증이다.

이 설문 결과에 나타난 갑질 상사 유형을 보면 대단히 전형적이다. 예상 가능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보는 눈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1위는 ‘미꾸라지형’과 ‘기분파형’이었다. 각각 20%씩을 얻었다. ‘미꾸라지형’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유형이다. ‘잘한 건 내 탓이오, 못한 건 네 탓’형이다. 참 얄밉다. 대체로 책임감하고는 거리가 먼 상사다. 사실 이런 상사에겐 그 자리가 아깝다. ‘기분파형’은 본인의 기분에 따라 그때 그때 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유형이다.

2위는 ‘이랬다 저랬다 말 바꾸기 변덕쟁이형(19%)’이었다. ‘사사건건 감시하고 지적하는 지적형’ 15%, ‘상사의 명령·의견에 무조건 순응하는 형’ 13%, ‘자신과 코드가 맞으면 OK 아니면 NO인 사내정치 조장형’이 11%로 그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건 대응 빙법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갑질상사의 행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정작 내놓은 답변은 방관하고 뒷담화하는 ‘소극적 대응’이 고작이었다. 실제 대처 방법을 묻는 질문에 ‘가능한 신경을 안쓰려고 노력한다’가 46%로 1위였다. ‘일할 때는 친한 척 뒤에서는 뒷담화를 한다’ 16%, ‘본인이 이직한다’는 15%였다. 이것이 직장내 갑질의 현주소다.

그냥 재미있는 조사 결과쯤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현실이 너무 뼈아프다. 이 조사 결과에 간과해선 안될 교훈 하나가 숨어 있다. ‘갑질의 악순환’이 그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97%의 직장인들에게 갑질을 행사한 상사도 한땐 을의 직장인이었고, 상사 갑질의 피해자였다. 다시말해 현재의 상사 갑질 경험자인 97%의 직장인들이 모두 잠재적 상사 갑질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갑’이 내일 ‘을’이 되고, 오늘 ‘을’이 내일 ‘갑’이 되는 것은 직장내 일상사이기 때문이다.

상사 갑질의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때론 정신질환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직장내 갑질을 청산해야 하는 이유다. 직장내 갑질 청산은 ‘악순환의 고리’ 차단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한 만큼 되갚아주는 풍토가 살아있는 한 갑질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낼 수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내탓이오’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용기다. 나부터 갑질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야 남도 설득할 수 있다. 그래야 잠재적 상사 갑질의 가해자를 줄일 수 있다.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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