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망월동 가는길, 이팝나무

입력 2018.05.16. 16:41 수정 2018.05.16. 16:53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논설주간

‘이팝나무’를 달리는 ‘이밥(흰 쌀밥)나무’라고도 한다. 꽃잎이 뜸 잘든 하얀 밥알처럼 생긴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이 잘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꽃이 피는 시기가 입하(立夏)를 전후로 하는데다 논에 모를 심는 못자리 철에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리와 관개시설이 변변치 않던 시절의 일기가 농사의 풍·흉과 관련이 깊어서였다.

이팝나무에는 가슴아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마음씨 고운 착한 며느리와 고약한 성질을 가진 시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다. 어느 해 며느리가 집안의 큰 제사를 맞아 흰 쌀밥을 짓게 되었다. 혹시 밥을 잘못 지으면 시어머니의 성화와 야단이 불을 보듯 뻔했다. 걱정이 앞선 나머지 밥이 다 될 때쯤 솥뚜껑을 열어 주걱으로 떠서 밥알을 씹어보았다. 그 순간 부엌으로 들어오던 시어머니가 이를 보고 길길이 뛰며 야단을 쳐댔다.

자세한 연유를 설명할 겨를도 없이 야단을 맞은 며느리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 길로 뛰쳐나가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사연을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나무 한그루가 자라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마치 하얀 쌀밥처럼 무더기로 피어났다. 쌀밥 때문에 목숨을 끊은 며느리의 넋이 한(恨)으로 남아 그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함이었으리라.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팝나무는 전국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8주)돼 있는가 하면 수령 200~500여년 사이의 노거수(20여주)로 보호받고 있기도 하다. 그 가운데 옛 승주군 쌍암면의 500여년된 이팝나무가 가장 오래됐다(천연기념물 제36호). 꽃이 피기 시작하면 20여일간 잎이 안보일 정도로 향기로운 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어버리는 이팝나무는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인기있는 수종(樹種)이다.

5월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망월동(북구 운정동) 가는 길 양 옆으로 이팝나무의 꽃들이 만개했다. 80년 그 때만 해도 농로 수준을 겨우 면했을 그 길에 5월의 넋들을 위로하고자 누군가 한그루 두그루 심어놓은게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들로 자라나 흰 쌀밥같은 꽃들로 뒤덮였다. 이팝나무에서 피어난 꽃들은 풍년들어 배곯은 이들이 없는 대동(大同)세상을 바라며, 며느리의 한서린 넋을 달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망월동 가는길을 흐드러지게 장식하고 있다.

38년전 그날 민주, 인권, 평화에 바탕한 ‘사람사는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총·칼로 무장한 불의의 세력에 맞서 일어선 의로운 이들에게 전해졌던 주먹밥도 이팝나무 흰 꽃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스레 지어졌을 터다. 부조리한 세상을 촛불로 뒤덮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초석을 다진지 1년. 아! 5월이여. 망월동이여. 그 길에 피어난 이팝나무 흰 쌀밥같은 눈부신 꽃들이여.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최근 무등칼럼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