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석복겸공(惜福謙恭)

입력 2018.05.09. 18:23 수정 2018.05.09. 18:26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 행태가 알려지자 양파 껍질처럼 이어지는 실상에 세상이 놀라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회의 때마다 반복된 욕설에 적응된 양 “항상 그랬다”는 내부 제보자들의 반응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촛불에서 미투로 미투에서 갑질로 세상에 부끄러운 민낯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금언이 있다. 비우고 내려놓아 복을 아낀다는 뜻의 석복겸공(惜福謙恭)이다. 모두가 복 받으라 인사하는 시대에 복을 아끼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잘 나가는 지금이 바로 멈출 때다! 자만을 멀리해 겸공(謙恭)으로 석복하라!”

끝없이 욕심만 부리고 질주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석복겸공’을 가르쳤고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가르침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물욕에 빠져버렸다.

송나라 승상을 지낸 장상영이 말했다.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쓴다.”

예로부터 불교계에서는 아예 ‘석복수행’을 해왔다. 말 그대로 복을 아끼는 수행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유도 오는 복을 아끼지 않고 물 쓰듯 써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가르침이다.

복이 다하면 나락(奈落)으로 떨어진다는 뜻의 복진타락(福盡墮落)도 비슷한 의미다.

최근 고전 100편을 담아 책을 낸 인문학자 정민 교수도 시대에 맞춰 ‘석복’을 첫머리에 내세웠다.

성현들이 ‘석복’에 관한 교훈을 많이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쉽게 실천하기 힘든 ‘절제’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자기 성찰과 함께 중용, 균형 그리고 멈춤의 미학을 깨달아야만 가능한 실천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가르침과 달리 지금 우리는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정치, 권력에 물욕은 물론 사랑까지 끝장을 보려고 한다. 본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갑질에 협박하고 심지어 데이트 폭력까지 가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만 봐도 ‘개인 복은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의 복이 다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그런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법칙을 사례로 들지 않아도 사실 세상만사 대부분이 성하면 반드시 쇠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별로 교육감 후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후보들 정책 앞부분을 장식하는 ‘인성교육’이 유학 다녀 온 재벌 자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인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시기다.

우스갯소리지만 22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석복수행하실 분들 모집 홍보물을 돌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래저래 걱정이다. 도철 지역사회부장 douls18309@hanmail.net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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