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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
입력 2018.05.02. 08:46 수정 2018.05.02. 08:53 댓글 0개‘시’에 관한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마리오의 우정을 다룬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 중학교 손자를 혼자 키우며 시를 배우러 다니는 양미자 씨가 등장하는 이창동 감독의 , 그리고 패터슨 시(市)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버스 운전사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를 쓰는 과정을 그린 짐 자무시 감독의 등이 떠오른다. 비평가 신형철은 「인간의 형식」이라는 글에서 는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는 ‘시’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은 ‘시작(詩作)’에 관한 영화라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 은 무명 시인 패터슨이 시를 쓰는 행위와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다. 패터슨은 매일 새벽 6시 10분 무렵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과 동네를 산책하고, 바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반복적 일상의 틈을 비집고 이어지는 시쓰기는 그의 삶을 평범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행위다. 말수가 적고 주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인 그가 내면을 드러내는 순간 역시 시쓰기를 통해서다. 영화에는 패터슨이 쓴 시가 일곱 편 등장하는데, 이 7이라는 숫자는 공교롭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일상을 병렬적으로 다룬 서사구조와 일치한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침대 위에 누운 두 사람의 자세도 조금씩 다르다. 출퇴근하며 눈여겨보는 사물이나 풍경도 조금씩 다르고, 정해진 구간을 도는 23번 버스에 탄 승객들도 조금씩 다르다. 이란 여성인 아내가 매일 그려내는 이국적 패턴도, 동네 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도 패터슨의 내면과 비밀노트 속에 펼쳐지는 시의 발걸음이 조금씩 다르다. 일상 속에서 시는 완성을 향해 한 줄 한 줄 나아간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야말로 짐 자무쉬가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에 나오는 시들 중에서 「다른 하나(Another One)」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릴 때 너는 / 배운다 / 사물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 / 높이, 넓이, 그리고 깊이. / 신발상자처럼. / 그리고 나중에 너는 듣게 된다 /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걸 : 시간.” 미국 시인 론 패짓(Ron Padgett)이 썼다는 이 시에서 삶은 높이, 넓이, 깊이, 그리고 시간의 차원을 지닌 신발상자에 비유된다. 앞의 세 가지 차원이 공간적인 것이라면, 시간은 그 공간성을 변화시키는 네 번째 차원이다. 우리는 한 켤레 신발처럼 일상 속에 갇혀 살지만, 시간은 매순간 미묘하게 다른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마치 패터슨의 아내에게 토요일이 컵케ㅤㅇㅣㅋ이 완판되는 날인 것처럼, 패터슨에게 일요일이 소중한 시작노트가 애완견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는 날인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현실과 그 부부가 꿈꾸는 이상 사이에서, 성공한 예술가와 좌절한 아마추어 사이에서, 사랑과 실연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아이와 노인 사이에서, 노동과 시쓰기 사이에서, 잃어버린 시와 아직 오지 않은 시 사이에서…… 이 모든 것들은 시간 속에 배태된 이란성 쌍둥이 같은 것처럼 여겨진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쌍둥이 모티프를 감독이 숨겨둔 중요한 은유로 읽는다면, 은 ‘시’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시간’에 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시작노트를 잃고 폭포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패터슨에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암스의 고장 패터슨을 찾아온 일본인 시인은 말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그 말을 곱씹으며 패터슨이 터뜨린 감탄사는 ‘아하!’였다. 약간 진부한 결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순 없지만, 이 감탄사 덕분에 패터슨은 다시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들을,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들을 다시 적어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 [무등칼럼] 22대 국회의원 생존법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이 뽑혔다. 선거가 축제라고 하나, 혐오, 증오의 언어들만 날뛰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권력이 교체됐다. 헌법기관으로서 법을 만들고 정부 예산안 심의, 국정조사 등 이들의 역할은 막중하고 막강하다. 184개에 달하는 특권도 싫든 좋든 갖는다.22대 총선 키워드는 심판, 복수였다. 민생 정책이나 화두는 없고 오로지 정권심판, 이재명 조국심판, 윤석열 탄핵, 텃밭 독점 심판 등등, 심판으로 시작해 심판으로 끝났다. 투표가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인된 심판답게 유권자의 욕구에 부응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은 192석이라는 거대한 집을 지었다.광주전남은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파란색,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채워져 정권 심판에 힘을 실어주었다. 윤석열 정부의 불통과 오만,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의와 공정, 비상식적 국정 운영은 무서운 민심의 칼날로 비토당했다.지난 2년전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지지를 보내준 지역민들도 신임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선거때마다 욕하면서 찍었고,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으로 불편함을 갖고 있던 지역민들도 정권 심판의 창구로서 민주당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선거는 민의를 반영했지만, 지역 사회에 숙제를 던졌다.오직 이재명만 외친 후보자들22대 총선에서 광주전남은 민주당의 비주류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민주당의 심장부라고 자처함에도 선출직 지도부 한 명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래알처럼 존재감이 없다. 서로 견제를 하다보니 텃밭의 영향력 훼손을 자초했고, 중앙당도 눈치볼 것도 없이 광주전남을 주머니 속의 공깃돌처럼 취급했다. 자업자득이다. 총선 과정에서도 대한민국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김대중 정신은 없고, 지역발전에 대한 정책은 대충 때웠다. 오직 정권심판만 외쳤다. 이재명 대표와 친하고 대여 투쟁의 전사임을 선전하는 목소리만이 춤췄다. 광주전남은 민도가 높고 민주화도시라고 미사여구로 포장하면서도 갈길 바쁜 5·18 전국화를 발목잡는 5·18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는 것에서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이들은 분명한 정치철학보다 민주당의 새 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눈치빠르게 민심의 니즈에 코드를 맞춘, 그 이상도 아니다.지역 내부 부조화에 문제 의식을 느껴도 지배적 인식과 다른 말을 하기 싫어하는 지역공동체 기류와 무관치 않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기 정당화 명분을 찾는다. 조국혁신당이 광주전남의 전폭적으로 창당 한 달 만에 당당히 제3당으로 자리잡은 것은 이를 반증해준다.광주전남 지역민들은 단호했다. 아니, 독했다. 오만과 불통의 윤석열 정부 심판이라는 목표앞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몰빵했다. 정권심판론의 쓰나미에 인물론, 제3세력, 균형과 견제 등 다른 선택지의 고민은 없었다.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대선에서 실패하고 대구에 내려갔을 때 받아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결과 대구는 국비 반영 상승률이 최고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긴 해도, 국비 지원사업에 대한 경륜 등의 정무적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지역민의 정치적 스탠스는 주목할만하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에서는 '인물을 키우지 못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광주전남 국회의원 18명 중 11명이 초선이어서 중앙 무대에서 말발이 먹히겠느냐식의 걱정이자 푸념이다.광주전남은 문재인 정부 당시 치러진 총선에서 선택한 안철수 국민의당 실험에 실패후 민주당 쏠림이 심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러니 현역 교체 욕구가 높은 지역 정치적 성향에서 4년후에도 만약의 바꿔 요구를 벗어날 당선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참, 가혹한 설정이다. 그렇지만 숨길수 없는 지역 기류는 명심해야할 대목이다.거야의 몸집으로 구성될 22대 국회는 무산된 특검법이 재추진될 것이다. 정권 심판을 내걸고 당선됐으니 지역민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 한편으론 싸움판의 전사로만 동원돼 아무런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할까 우려스럽다. 전투력만이 아닌 전문가로서 실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지역민의 기대감과는 동떨어질 수 있다.전투력과 전문성 보여야무엇보다 텃밭에 맞는 정치력 복원이 중요하다. 국회의원 18명 모두가 하나돼 광주전남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벌써 2년후 지방선거에 눈독을 두고 있겠지만, 서로 견제만 하단 방안퉁수, 따로국밥 신세를 면치못한다. 또한 정국 이슈를 주도할 전문 영역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본인의 실력이 안되면 지역내 문제의식과 또 정책적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총선 투표 인증한다고 대파들고 사진찍는 것처럼 자기편들만 어울리는 이벤트성 정치에 매몰되지 않아야 함도 당연하다.대한민국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화시대에서 지방이 살아갈 길에 대한 해법 모색에 집중해주기 바란다. 그러기에 묻는다. 광주군공항 이전 어떻게 할 것인가? 4년 동안 서로 눈치만 보다 예정된 미래를 보낼 것인가. 22대 국회에 입성하는 광주전남 국회의원들이 지역 현안 1호 정책 과제로서 머리를 맞대고 풀어내야 한다. 이것이 지역민이 바라는 진정한 국회의원의 역할이다. 연말에 '특별교부세 얼마 받았네' 플래카드로 단체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쪼잔한 장면은 보고 싶지 않다.지역민들과의 스킨십과 소통은 당연히 선출해준 유권자에 대한 도리이다. '4일은 국회, 3일은 귀향', 국회의원의 자기 만족적 홍보 활동을 꼬치꼬치 알고 싶은 지역민은 없다. 유권자의 저울에 합당한 자만이 4년후에도 살아남는 점만 기억했으면 한다. 당선된 지 1주일밖에 안됐는데, 벌써 당선인의 고개가 치켜들여졌다. 1,460일, 초심을 잃지말았으면 한다.이용규 신문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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