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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의 오버타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1승의 가치

입력 2018.04.25. 08:00 댓글 0개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벌어진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NC 다이노스-넥센 히어로스 경기. 연장 11회 초 1사 이후 나성범이 극적인 중월솔로홈런으로 팀을 9연패의 수렁에서 탈출시키고 있다. 1루에서 로우파이브를 하는 나성범을 보며 덕아웃에서 만세를 부르는 NC 선수들의 밝은 표정이 그동안의 연패부담을 짐작하게 만든다. 고척 ㅣ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종목을 불문하고 연패는 모두가 꺼리는 단어다. 매일매일 새로운 경기를 치르는 까닭에 프로야구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승패에 둔감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연패가 길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에서도 연패와 스윕이 초반부터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두산과 SK를 제외한 8개 팀이 벌써 적어도 한 차례씩은 스윕을 당했다(3연전 기준). 특히 롯데는 개막 7연패, NC는 올 시즌 전 구단을 통틀어 최장인 9연패에 시달렸다. 연패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한 만큼 승리 시 느끼는 기분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통적으로는 1승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NC 김경문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김경문 감독을 기쁘게 한 1승
 
NC 김경문(60) 감독은 18일 고척 넥센전에 앞서 전날 거둔 승리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9연패는 세 번 정도 해봤는데 10연패는 안 해봤다”며 “내가 800승 정도 한 것 같은데, 어제 승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기분 좋은 승리였다”고 밝혔다. 연장 11회 나성범의 결승 솔로홈런 덕에 넥센을 3-2로 따돌리고 9연패에서 탈출한 기쁨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까지 정규시즌 통산 876승(30무735패)을 거둔 맹장이다. 포스트시즌 경험만 무려 10년이다. NC의 창단 사령탑으로 1군 첫 시즌이었던 2013년에는 70경기 넘게 패배의 아픔도 맛봤다. 그러나 언제나 연패는 쓰라린 기억인 듯, 김 감독은 9연패의 악몽을 떨친 전날 밤의 흥분을 굳이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10연패를 당하면 못 참을 것 같았다”는 또 다른 한마디 속에 1승을 향한 절절함이 묻어났다.

kt 김진욱 감독. 스포츠동아DB

● 김진욱 감독을 집중케 한 1승

KT 김진욱(58) 감독은 올 시즌 탈꼴찌를 넘어 5강 진입을 선언했다. 출발은 나무랄 데 없었다. 10~12일 NC와의 마산 3연전에선 싹쓸이 승리를 챙기며 10승6패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13~15일 LG, 17~19일 SK에 연속으로 스윕을 당했다.

잠실 원정 3연패 직후 첫 경기였던 17일 수원 SK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지난해보다 전력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아질 수 있다”며 반등을 자신했다. 게다가 지난 겨울 믿고 뽑은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이날 선발로 예고돼 있었다. 하지만 니퍼트는 4.1이닝 만에 10안타 2홈런을 맞고 5실점했다. KT도 패배를 추가했다.

KT는 지난 시즌에도 초반 16경기에서 10승6패로 2위를 달렸다. 그러나 이후 10경기에선 한 차례 스윕 패를 포함해 2승8패로 무너졌다. 열흘 새 순위 또한 8위까지 떨어졌고,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17일 경기를 앞두고 KT 구단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난해 초반이랑 여러모로 똑같다. 결말은 좀 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프링캠프부터 줄곧 “지난해까지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했지만, 올해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김 감독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올해 김 감독과 KT는 1승 1승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20~22일 대구 원정 3연전에서 삼성에 2승1패를 거두고 반등의 기틀을 마련했다.

삼성 시절 김응용 감독.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김응용 감독을 괴롭게 한 1승

김응용(77)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해태에서 9번, 삼성에서 1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군 KBO리그 최고의 명장이다. 통산 1554승(68무1288패)은 역대 최다승이다. 승리가 훨씬 익숙하지만, 그 역시 연패를 피해갈 순 없었다. 한화 시절인 2013년의 13연패가 개인 최다인데, 그 이전 기록은 삼성 사령탑이던 2004년의 10연패다. 2004년 5월 5일 대구 현대전부터 18일 대구 KIA전까지 11경기에서 1무10패로 휘청거렸다.

10연패를 당한 그날 밤 김 감독은 당시 선동열 수석코치를 술자리로 불러 “힘들어서 못하겠다. 이제 네가 감독을 해라”고 말했다. 하늘과도 같은 스승의 폭탄선언에 선 코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김 감독이 건넨 폭탄주를 10잔 넘게 거푸 들이키고는 눈물로 사퇴를 만류했다. 그때도 이미 1300승 넘게 거둔 백전노장이었지만, 10연패를 끊고 1승을 더하기까지는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튿날 KIA를 6-4로 꺾고 천신만고 끝에 연패의 터널을 벗어났다. 김 감독과 삼성은 10연패의 충격을 딛고 그 해 정규시즌 2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스포츠동아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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