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걸으며 사색하는 공간

입력 2018.04.23. 17:14 수정 2018.04.23. 17:18 댓글 0개
김동하의 도시풍경 건축가
김동하의 도시 풍경 이야기(5)
사직공원 숲을 그리다.

도심 속 공원은 거미줄과 같이 얽힌 도로와 높은 건물 속에서 허파와 같은 존재다. 인간이 한정된 장소에서 폐쇄되었다고 느낄 때, 공원은 일시적으로나마 마음과 생활의 영역을 넓혀준다. 이 곳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기며 생활환경의 연장을 찾는다. 도시의 오픈 스페이스로써 시민들에게 중요한 활력소가 된 곳은 광장과 공원이다.

파크(park)는 원래 수렵용 동물이 있는 둘러싸인 땅을 의미하며,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헨리8세가 만든 사냥터, 궁전의 정원으로 존재한 곳이었다. 도시가 팽창하고 시민에게 개방하며 공공공간으로 바뀐 것이 공원의 시초로 본다. 우리나라는 1880년대 서구 열강이 만든 인천의 자유공원과 우리정부가 원각사 터에 만든 탑골공원이 최초라고 한다.

광주 도심에는 옛 읍성권 서편에 두 개의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공원과 사직공원이 그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광주의 정기인 거북이가 머문다는 성거산에 1913년에 구강공원을 만들고, 일본의 신사를 세웠다. 광복 후 철거되고 광주공원은 성거사지 오층석탑, 충혼탑과 향교가 역사를 잇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멀지 않은 곳에 도심에서 금교를 지나 천변을 건너면 사직공원이 있다. 이 곳은 농경사회 시절 각 지역마다 있던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셔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이 있었으며, 주례에 따라 광주의 서문 밖에 위치한 양림산에 신성한 장소로 존재하였다. 이 곳이 공원으로 된 것은 1924년 일왕의 세자, 히로히토의 결혼을 기념한다며 공원으로 만들었다. 70년대 수영장과 동물원, 놀이 시설이 지어지며 광주 시민들이 즐기는 장소로 크게 변했다. 90년대 초까지 사직공원은 도심 멀리 소풍을 가기에는 교통여건이 쉽지 않았던 시절, 단골명소로 팔각정이 있는 유원지로 존재하였다. 1992년에 여론에 따라 동물원, 놀이시설이 우치동으로 옮겨지고, 동서 축으로 반듯하게 놓인 사직단 복원과 함께 도심의 자연공원으로 재정비하였다. 공원 내에는 여러 문인들의 시비를 세우고, 수목을 다시 심으며 자연을 끌어들이려 시도했다. 2005년 도청이 이전되고, 인적이 드물어지면서 이를 되살리기 위한 여러 계획안이 세워졌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 2012년에 자연과 조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선정된 건축가들은 옛 방송국 길 기슭, 동물원 올라가는 길, 공원관리사무소에 장소의 생태와 어울리는 오브제 같은 공공건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몇 해 뒤 팔각정 자리에 전망탑이 들어서고 도시의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유아 숲체험장을 만들며 옛 활력을 되찾고자 부단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울창한 숲과 여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원의 자연길 산책은 찌든 심신을 평안하게 하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도심공원은 한정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자유를 확대해 준다. 근래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길과 숲을 통해 자연의 공간적인 여유를 즐기는 ‘사색의 공원’을 주제로 조성하고 있다. 광주에는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만든 자랑스러운 ‘푸른길’이라는 선형공원이 조성되면서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도시 풍경을 바꾸었다.

최근, 도시공원 일몰제로 2020년에 적용되는 공원부지가 전국적으로 쟁점화되고 있다. 광주에서도 중앙, 중외, 일곡, 송정공원 일대가 이에 해당하면서 녹지공간에 대한 공원 부지가 민간개발업체로 넘어가면 고층개발이 이루어질 거라는 이슈가 한창이다. 민관의 슬기로운 계획과 타협으로 수많은 시민이 웃으며 머무는 공간, 사색하며 걷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푸르른 숲이 이룬 공원을 걷는다.

김동하 (건축가, 아뜰리에38건축도시연구소장, 광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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