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감독 잘리면 해설하라?"…문경은, 혹평 날려버린 첫 우승

입력 2018.04.18. 22:04 수정 2018.04.19. 15:37 댓글 0개
기쁨의 눈물 흘리는 문경은 감독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람보 슈터' 문경은(47) 서울 SK 감독이 우승에 맺힌 한을 풀었다.

문 감독이 이끄는 SK는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인 원주 DB와의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6차전에서 80-77로 승리, 2연패 뒤 내리 4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다.1999~2000시즌 챔피언 등극 이후 18년 만이다.

문 감독은 정규리그에서 주전 가드 김선형(30)의 발목 부상, 플레이오프 직전 애런 헤인즈(37)의 시즌아웃 등 여러 악재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2011~2012시즌 감독대행으로 SK 사령탑에 오른 뒤 6시즌 만에 처음 맛보는 우승 감격이다.

챔피언결정전 두번째 도전 만에 정상을 밟은 문 감독에게 이번 우승반지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SK는 2012~2013시즌 44승10패로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4패로 무릎을 꿇은 아픈 기억이 있다.

그동안 문 감독에 대한 농구계 안팎의 평가는 박했다. 팬들 사이에서 '문애런'이라고 불렸다. 간판 외국인선수 애런 헤인즈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의미다.그도 그럴 것이 헤인즈와 함께 정규리그 우승까지 한 문 감독이지만 헤인즈가 고양 오리온에 있던 시기에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보유했으면서도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전술과 전략이 부족한 지도자라는 혹평을 들었다.

지난 시즌 사석에서 몹시 불쾌한 경험도 했다. 어느 관계자가 문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SK 구단 단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문 감독의 지도력을 지적하며 비꼬았다. "문 감독 정도면 감독 잘려도 해설하면 되지"라는 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듣기에 따라 매우 거북한 발언이다. SK는 지난 시즌 7위에 머물러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했다.

문 감독은 둥글둥글한 성품이다. 싫은 소리를 들어도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못하고 뒤에서 앓는다. 이런 성격 탓에 유독 박한 평가를 받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오죽하면 농구인들 사이에서 '문띵'으로 불릴 정도다.

이번 시즌에는 '모래알 기사단'이란 소리를 듣던 과거와는 달랐다. 시즌 초반 국가대표 가드 김선형이 발목 부상으로 12주 진단을 받아 큰 위기를 맞았다. 실제 복귀까지는 12주 이상이 걸렸다.김선형의 부재에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이번에는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헤인즈가 무릎을 다쳐 시즌을 마감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완전체는 이루지 못했다.

문 감독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중국에서 시즌을 마친 제임스 메이스를 영입해 백지상태에서 단기전을 준비했다. 헤인즈 중심의 전술·전략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테리코 화이트를 통해 변화를 줬고 김선형의 출전시간 조절, 수비전담 최원혁의 기용, 기습적인 3-2 드롭존 활용 등 다양한 수로 DB의 상승세를 꺾었다.

KBL 리그 특성상 감독이 외국인 선수에게 주요 임무를 주고,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경중의 차이일뿐 어느 팀, 어느 지도자나 마찬가지다.

문 감독은 이번 정규리그에서 역대 10번째로 감독 200승을 신고했다. 당시 "감독 데뷔전을 비롯해 수많은 경기들이 기억나지만 다시 하고 싶은 경기를 꼽으라면 현대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이다. 다시 간다면 1승이라도 꼭 거두고 싶다"고 했다. 4패의 한을 우승으로 풀었다.

광신상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문 감독은 선수 시절 이충희-김현준(작고)의 계보를 잇는 국가대표 슈터였다. 별명은 '람보 슈터'다. '농구대잔치 오빠부대' 출신 감독의 선봉으로 주위의 혹평에 이를 갈던 문 감독이 드디어 우승팀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2000~2001시즌 삼성 선수로 우승한 문 감독은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에 이어 역대 3번째로 감독과 선수로서 모두 우승한 주인공이 됐다.

우승이 확정된 후 펑펑 눈물을 쏟은 문 감독은 "2패 뒤 승리를 거둔 3차전이 시리즈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것 같다. 말할 것도 없이 기쁘다. 우리 선수들 정말로 사랑한다"며 "5년 전, 챔피언결정전에서 4패를 당한 게 많은 공부가 됐다"고 했다.

부상으로 빠진 헤인즈에 대해서는 "같은 우승이라면 헤인즈와 했어야 더 감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5년 전에 함께 4패를 당했던 동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SK는 헤인즈를 위해서도 우승 기념반지를 제작할 계획이다.

fgl75@newsis.com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