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대통령의 약속, 빌리브란트의 사죄

입력 2018.04.18. 18:14 수정 2018.04.18. 18:18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별이 된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참사 4년만이다. 정부가 처음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합동추모식을 열었다. 대통령이 추도사를 통해 (세월호 비극으로) ‘생명을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게 됐다며 “세월호를 기억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의 노골적인 폄훼와 멸시 속에 국회 앞 시멘트 바닥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오체투지로 진실규명을 외쳤던 부모들의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 받았으리라.

대통령의 다짐과 약속은 이달 들어 두 번째다.

지난 3일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현직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로 참석한 추념식에서 그는 사과와 완전한 해결을 다짐했다. 70년의 세월 동안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내지 못하고 속으로 울어온 유가족과 제주도민들에게 한 조각 위로와 평안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추도사에서 말한 것처럼 ‘생명을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회로 나갈 수만 있다면, 나가기만 한다면 지옥같았던 지난 세월의 응어리가 봄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을 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만 한다면야, 이 추악한 사회의 ‘등신불’이 된 304명의 생명들도 저 검푸른 통한의 바다를 떠나 그들의 세계로 갈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 한국 근현대사의 4월은 일견 상처와 고통의 지옥도에 다름 아니다. 허나 기실 ‘부활’인 것이다. 숨이 막힐 듯한 이 고통이 새로운 사회로 나가는 전환의 상징일 때, 아프고 아리지만 역설적으로 사회 변혁의 진앙지가 되는 것이다. 제주 4·3과 세월호가 다음 사회로의 변환을 준비중이라면 4·19 혁명은 온 몸으로 변환을 보여줬다. 부활절이 4월인 것은 기실 그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4·3과 세월호의 비극에 마냥 아파하고 있을 수 많은, 있어서만은 안되는 이유이기도하다.

비극이 영광이기 위해서도, 유가족 등 살아남은 이들의 유령처럼 떠도는 발길이 지상에 안착하는데도,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가는데도 책임있는 당사자, 국가의 사죄와 약속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대통령의 약속은 범죄를 부인하고 외면하고 피해자를 짓밟아온 이사회의 죄악을 끊는 고리이자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점일 것이다.

당사자의 사죄가 어떻게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하는지 저 멀리 독일 빌리브란트의 사죄가 보여줬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독일의 전쟁범죄를 사죄했다. 적대감을 갖고 있던 폴란드 국민들은 브란트 수상의 모습에 가슴속 응어리를 덜었다고 한다.

지난 정권의 범죄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약속과 다짐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는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는 것이다.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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