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조용필’

입력 2018.04.15. 17:00 수정 2018.04.15. 17:01 댓글 0개
최민석의 약수터 무등일보 문화체육부장

국내 연예계에는 54년 지기이자 자신의 이름 앞에 ‘국민배우’와 ‘국민가수’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배우 안성기와 ‘가왕’ 조용필이다.

이들은 서울 경동중학교 동창으로 오랫 동안 우정을 쌓아온 죽마고우이자 절친이다.

조용필과 안성기는 평생 활동하며 쌓아온 예술적 성취와 업적, 반듯한 사생활, 모범적인 행보로 자신들의 직업에 ‘국민’칭호를 얻었다.

국민적 인기와 호감도, 직업 외적인 면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스타이기 때문이다.

최근 데뷔 50주년을 맞은 조용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조용필은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성사된 우리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 대표 가수로 후배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펼쳐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 평화 조성의 물꼬를 텄다.

조용필은 50주년 공연 준비로 후두염까지 앓으면서도 연습에 심혈을 기울이고 무대를 꾸며 찬사를 받았다.

조용필은 1968년 데뷔한 이후 5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19집 20개의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비정규앨범까지 포함하면 50개에 달하며, LP와 카세트, CD를 거쳐 디지털 음원까지 석권한 국내 유일의 가수로 꼽힌다.

안성기는 “친구 조용필이 자연인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수 조용필은 어마어마한 거인”이라며 “가창력을 물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작의지는 많은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배철수는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조용필의 음악은 마치 비틀즈, 롤링 스톤즈, 에릭 클랩튼처럼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고전처럼 우리 가요사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60년대 기타리스트로 시작된 조용필의 인생 여정은 1976년 불어닥친 ‘대마초 파동’으로 잠시 공백기를 맞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민요와 판소리 등을 공부하며 음악적 내공을 쌓았다.

이어 조용필은 80년 ‘창밖의 여자’로 컴백,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최초의 오빠부대가 등장했고 대중음악의 무게중심이 영미 팝음악에서 가요로 옮겨온 것도 조용필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는 열거하기 힘든 기록과 수상으로 ‘가왕’의 호칭을 얻었고 80년대 이후에는 공연 중심으로 활동 패턴을 전환, ‘콘서트’ 황제로 떠올랐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그저‘가수 조용필’로 부르기를 원한다.

현역가수이자 음악인이기 때문이다.

70세 문턱에 선 조용필은 지금도 후배 가수들과 자주 소통하며 늘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겸손한 창작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들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여전히 ‘젊은 오빠’로 5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오는 6월 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등지에서 50주년 기념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를 연다.최민석 문화체육부 부장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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