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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을 넘어, 배제된 슬픔을 넘어
입력 2018.04.15. 13:28 수정 2018.04.15. 17:04 댓글 0개1980년 여름 어느 날 광주 집에 돌아갔다. 집은 광주 시내 한 복판에 있었다. 그해 5월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내게 광주에 내려오지 말라고 화급하게 연락했었다. 그동안 광주는 소문으로 전해졌고, 쉬쉬하는 화제였다. 그 후 처음 귀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앉혀 놓고 그동안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셨다.
“사실은 이랬다!” 학생들의 질서정연한 시위가 있었고, 계엄군의 끔직한 만행이 있었고, 시민들의 분노와 항거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시민들은 질서를 존중하고 나라를 걱정했다. 폭도 운운하며 불온시하는 온갖 루머와 이를 옮긴 언론 보도를 일일이 교정해 주었다. 아들을 붙잡고 한참 호소하는 이야기에는 광주시민으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억울함이 교차했다.
광주의 5월은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화제였다. 함께 겪은 광주시민 사이에서는 엄연한 진실인데도. 그것은 불온한 유언비어요, 선동이었다. 그런데 광주의 고립은 광주만의 것이 아니었다. 광주의 고립은 또다른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립을 의미했다. 광주의 고립은 민주화와 함께 비로소 풀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또다른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립이 해소되는 것과 함께 진행됐다.
그러나 아직도 미진하다. 광주시민이면 누구나 알았던 광주의 진실이 많이 알려졌지만, 발포 명령자 등 광주 밖에서 있었던 것은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다. 한편에선 세월에 따른 망각 속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 다른 거짓을 더해 이념문제로 덧칠하는 것이다. 당연했던 진실조차 그 기억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광주의 경험은 광주 시민만의 것이 아니다. 당시 진상을 그대로 보도한 외신뉴스를 본 외국인 반응 중엔 ‘광주시민이 소수민족이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감정으로 왜곡하는 걸 보면, 진짜 소수민족이기라도 했다면 어쨌을까 싶었다. 그렇다. 고립된 불안, 배제된 슬픔의 경험은 5월 광주시민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광주 5월을 겪고 나니, 무심히 넘겼던 역사적 사건이 다시 보였다. 가령 제주 4·3사건에서 이념 대립보다 양민 학살의 부분이 주목됐다. 국가 폭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 도민의 억울함이 이념문제로 덮어졌을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됐다.
광주 시민단체들이 일찌감치 세월호 유가족 활동에 공감하고 동참한 것은 왜였을까? 세월호 유가족이 정부로부터 불온한 세력으로 취급될 때, 5월 광주를 겪었던 시민이라면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고립되고 배제된 자의 억울함과 슬픔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4년이다. 지난 정부가 세월호를 그토록 불온시하고 덮으려 했지만, 정부가 무능하다는, 특히 대통령이 무감각하고 무능하다는 의심과 불신이 깊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과 구조실패가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더라도 탄핵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4년이 흘렀어도 미진하다. 지금까지 거론됐던 침몰 원인도 확정적이지 않다. 화물 과적과 평형수 문제도 결정적 원인일 수 없다는 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란다. 이제는 외부 충돌 가능성까지 확대 조사해야 한다고 한다. 당일 방송을 통해 보았던 국민들의 마음에 구조에 관한 의문은 여전하다. 시시각각 배가 기우는데 선장 등 몇 사람만 구하고 마는 모습을 보고 난 의문이다. 도대체 못 구했나, 안 구했나? 세월호 진상 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한풀이가 아니다. 희생을 덧없이 만들 수 없고, 참사를 되풀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 5월이 국가 폭력을 응징하고 민주화를 촉진하는 역사로서 하나의 모멘텀을 이뤘다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 무능을 응징하고 정부의 시민을 향한 책임감과 기능성을 높이는 역사로서 하나의 모멘텀을 이뤄야 한다.
광주 5월과 세월호 참사는 비극으로서 잊어버려야 할 사건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하고 정부가 시민과 고락을 늘 함께하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서,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 역사에 그런 사건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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