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과로한 대한민국에 워라밸의 물결이 도도히 넘쳐 흐르기를…

입력 2018.04.09. 16:59 수정 2018.04.09. 17:17 댓글 0개
박인철 경제인의창 광주신세계 관리이사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일컫는 워라밸 열풍이 일 많은 대한민국을 휴식이 있는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 2018년 첫번째 트렌드 키워드를 꼽으라면 워라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52시간 단축 개정안이 7월부터 시행된 데 이어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안에도 워라밸과 관련된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보여 기업 전반으로 번져 나가게 될 것 같다.

특히 파격실험이라 할 정도로 선제적으로 실행한 ‘신세계 주 35시간 근무제’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0시 출근해 18시까지 근무하여 과거 9시30분 출근해 20시까지 근무하던 때와 비교해 주 10시간 이상의 근무시간이 줄었다. 임금은 그대로다 줄어든 근무 시간은 주1회, 2시간 당직 근무제로 대체 가능하다. 야근 본능이었던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탈피, 이제 신세계는 정시 퇴근 문화를 완전히 정착시켰다. 처음에는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도 했었다. “임금을 줄이기 위한 회사의 꼼수가 아니냐”라는 곱지 않은 외부 시선도 있었다. 오랜 기간‘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했던 우리 나라에서 워라밸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렸었다. 시행 후3개월을 맞은 지금, 신세계 직원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8시 이후에 문을 닫는 근무 특성상 가족, 지인들과 함께하는 저녁 약속을 잡는 것이 유통업계 직원들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였다. 이제 가족과의 시간, 지역 커뮤니티 참여, 운동, 취미활동, 다양한 문화생활 등을 통해 풍요로운 저녁이 가능해졌다. 6시 정각이 되자 눈치 보는 것 없이 칼퇴 시작! 퇴근하는 직원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신세계 직원들은 ‘주 35시간 근무제’를 2018년 새해에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배려해 준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이라고 여긴다.

먼저 회사는 정시 퇴근 정착과 업무생산성 향상을 위해 pc오프, 집중근무시간제, 회의시간 제한 등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의 성공을 위해 시행 초기 야근하는 직원이 있을 경우 임원평가에 반영했다. 점심시간을 제외한 7시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임원, 리더급 팀장들을 비롯해 모든 직원들 스스로가 더욱 시간관리에 철저해졌다. 근무시간이 단축되며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분주하다. 일을 마감하고 미진한 업무를 챙기는 퇴근1시간전은 가장 바쁜 시간이다.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신세계 임직원들은 워라밸 문화의 확산과 제도의 정착을 위해 선구자적 정신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다. 회의는 가급적 30분, 최대1시간 이내로 간소화하고 보고는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 구두, 유선보고를 활성화하며 페이퍼워크는 대폭 줄어 들었다. 6시 퇴근 시간 이후 컴퓨터는 자동으로 꺼진다. PC에 접속할 경우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야근은 절대 할 수가 없다. 당직자만 남고 전원 퇴근,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된다.

광주신세계 전체 직원의 70%가 여직원이고 그 중에 88%가 기혼이다 10시~11시로 늦춰진 아침 출근시간도 사내 워킹맘들에게 가족들의 아침식사, 자녀들의 등교도 여유롭게 챙겨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필자에게는 출근 전 아침 시간이 오히려 더욱 타이트해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30분 늦춰지면서 영어 회화 수강을 추가했다. 아침의 여유도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업무강도가 세다’,‘일의 특성상 획일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일자리 창출로 연결이 안 된다. 급여가 줄 것이다’ 등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하나 하나 성공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지 근무시간 단축제도 자체에 대한 큰 흐름과 물줄기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격려하는 문화 속에 사회적 시스템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2017년에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연평균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 2위를 차지했다.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OECD평균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OECD국가 중 연 평균 근무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 보다 연 평균 4개월을 더 일하는 반면 임금은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알파고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 워라밸은 숙명이다. 이 시대 변화가 요구하는 가치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창조성이고, 이 창조성이 담겨있는 노동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워라밸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잘 하려는 대신에 가장 가치 있고 자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삶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단시간에 경제발전을 이루어 온 대한민국이 최장 노동시간으로 가장 과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서막을 연 워라밸의 문화가 대한민국 곳곳에 강물처럼 도도히 넘쳐 흘러 최장시간 노동의 오명에서 벗어나 저출산, 청년 고용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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