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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주택 순례 행렬'…정부 불신+부동산 신앙 반영

입력 2018.04.03. 16:00 댓글 0개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올 들어 아파트 청약시장이 정부 규제에도 이상 과열을 빚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등 고강도 규제를 쏟아내고 있지만 견본주택을 찾는 ‘순례 행렬’이 꼬리를 물고, 청약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기록하는 등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이러한 현상 뒤에 놓인 한국인들의 집단심리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한국인들의 신뢰가 여전하다는 점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1년 유럽발 금융위기 등을 잇달아 겪으며 그 믿음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부동산에 필적할 '안전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춘 안전 자산을 찾기는 힘들다는 ‘신앙’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4일 현대건설을 비롯한 건설 업계에 따르면 3월30일~4월1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견본하우스는 주말을 맞아 관람객들이 대거 몰리는 등 장사진을 이뤘다. 특히 봄철을 맞아 나들이를 겸해 견본주택을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도 대거 현장을 찾으며 사흘 동안 4만3000명이 방문하는 등 지방 축제현장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이다.

아파트 분양 관계자는 수요자들이 대거 몰린 배경으로 서울과 가까운 입지환경을 꼽았다. 이 관계자는 “서울과 생활권 공유가 가능한 입지 환경을 갖춰 강서구를 비롯한 목동, 마포 심지어는 서초와 강동에서도 수요자들이 몰렸다”면서 “지난 토요일(31일)에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개관 시간을 연장해 모델하우스를 운영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SK건설·롯데건설 컨소시엄이 경기 과천시에 분양한 '과천 위버필드'도 1순위에서 전타입이 마감됐다. 중도금대출이 적용되지 않는 85㎡ 이상 타입은 해당지역에서 미달돼 기타지역 청약을 받았다. 하지만 외부에서 청약자가 몰리면서 111.97㎡는 6가구 모집에 무려 845명이 몰렸다.

이밖에 당첨만 되면 수억원 대의 시세차익이 예상돼 올 상반기 분양시장의 최대어로 꼽힌 디에이치 자이 개포(개포8단지 재건축)도 지난달 21일 마감된 서울지역 일반 물량 청약에서 25대1의 경쟁률을 보이며 전평형이 모두 1순위 마감됐다. 10만 청약설이 나돌던 이 단지는 63P㎡에 청약자 1451명이 몰려 최고 경쟁률이 90.69대1에 달했다.

아파트 청약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은 서울아파트 시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폭은 3월 마지막 주 현재 7주 연속 둔화되고, 전세가는 2주째 하락했다. 매매가 상승폭은 0.24%로 올해 1~2월 평균(0.5%)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4월 이후 집값 전망도 불투명하다. 다주택자가 처분하는 주택의 시세차익에 매기는 양도세를 중과하는 데다, 보유세 인상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정부가 꺼내들 가능성도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뜻한다.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청약시장으로 쏠린 데는 ▲강남권의 일부 단지는 당첨만 되면 시세차익 수억원을 거둘 수 있고▲부동산만큼 안전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춘 자산이 없다는 판단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개포 자이 등은 3억~5억의 시세차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데, 저금리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노다지를 외면할 수 있냐는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당첨되면 강남은 3억~5억 정도 시세차익이 나지 않느냐”며 “한탕주의적 투기적 청약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덜컥 사기는 부담스럽다”며 “안전자산 구매심리도 한몫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학습 효과’도 청약 열풍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부동산 시장이 한때 위축됐지만, 다시 기력을 회복하며 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부동산을 향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가 현정부 부동산 규제의 원형이 된 각종 규제를 쏟아냈어도 집값을 잡지 못한 ‘학습효과’도 이러한 열풍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부동산빅데이터 전문가인 김기원씨는 “(참여)정부가 2003년 10.29대책부터 규제 정책들을 내놓았다”며 “(현정부) 양도세 중과, LTV와 DTI 강화는 당시 다 했던 거다. 하지만 상승세를 막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 경기, 인천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청약 열풍이 맹목적 추종의 결과는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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