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금남로 속으로-영화 <화려한 휴가> 세트장

입력 2006.09.22. 00:00 댓글 0개
5·18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의 야외 세트장이 최근 완성됐다.  도청건물과 금남로 등 항쟁현장들이 지금은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현지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영화 제작사측의 판단이었다. 많은 돈을 들이고 고증작업을 거쳐 세트장을 만든 이유다.  북구 오룡동에 위치한 <화려한 휴가> 세트장을 지난 18일 찾았다. 5·18기념재단에서 만든 오월 사진집을 보고 갔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너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지 않기 위한 나름의 준비이기도 했다.  많은 광주시민들의 가슴 속에 간직된 `광주오월의 현장’과 그 곳은 얼마나 겹쳐 있을까. 세트장일 뿐이지만, 26년 세월의 변천을 되짚어볼 수도 있는 곳. 아직 일반인들에겐 공개되지 않는 그 곳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편집자주  80년 5월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갔다. 치열했던 도청 일대가 그대로 재현됐다. 2006년 9월 그 곳에 다시 서니 26년 세월의 간극이 씁쓸하다.  재현된 공간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기억은 그대로일까 싶다. 얼마간 왜곡되고 얼마간 포장된 기억. 역사는 `기억의 투쟁’이라는데 우리는 투쟁에서 이겼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5·18광주민중항쟁을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영화 <화려한 휴가>의 주요 촬영장이 될 세트장이 완성됐다. 80년 5·18민중항쟁의 진원지였던 옛 도청과 광장, 금남로 1~2가를 실물크기의 80%로 재현한 세트장은 지난 5월말부터 100일 동안 총 27억원을 들여 북구 오룡동 1만4000여 평 부지에 만들어졌다.
▲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펼침막.
 세트장을 찾은 지난 18일, 아직 일반인 공개가 안되는 탓에 몇몇 주민들이 먼 발치에서 세트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정말 똑같이 만들어놨구만”하며 당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 수많은 시민군들이 산화했던 옛 도청 건물과 각종 집회를 열어 항쟁의지를 불태웠던 도청 앞 광장,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반독재 반유신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던 YMCA 건물, 오월 당시 시신들이 안치됐던 상무관을 비롯해 전일빌딩, 광주관광호텔, 수협전남도지부, 제일은행 등 주요 건물이 당시 모습대로 서있다. 분수대 옆에 있었던 시계탑도 그대로 복원됐다.  재현을 위해 지적도·설계도·사진 등의 대조 작업을 거쳤다.  세트장 제작을 총괄지휘한 이경일씨는 “사진만 100여 장을 수집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그래픽 작업을 통해 당시 거리를 재현했다. 소품 같은 경우엔 전국의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수집했고, 포니 차량은 이집트에서 역수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트장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들이 보인다. 김일세계프로레슬링과 전국체전 전남예선대회, 어린이날을 알리는 각종 플래카드와 홍보탑들이 세워졌다. 각 건물마다 `간첩 자수 및 신고기간’을 알리는 플래카드도 붙었다. `바르게 질서있게 깨끗하게’ `희망의 80년대를 400만의 화합으로’ `깨끗한 동구청’ 등 계도성 문구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광주시민은 간첩자수 기간에 `간첩’에 의해 조종받는 폭도로 매도당했고, `희망의 80년대’를 보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 담배가게에는 '아리랑' '화랑' 등 당시 담배가 진열됐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마저도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전봇대에 붙어있는 손으로 쓴 낡은 전단지에는 `수술하지 않고 먹는 약 부작용 없음 한약재 사용’이라는 임신중절 약을 판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삼청호텔 나이트 클럽 광고지는 나비소녀와 가수 정훈이가 출연함을 알리고, 안소니 퀸이 출연하는 영화 <그릭 타이쿤>의 포스터가 골목 어귀에 붙었다. 담배가게에는 `아리랑’ `환희’ `거북선’ `새마을’ 따위의 담배들이 진열돼 있다. 신기한 옛 소품들이지만 그렇다고 향수엔 젖지 마시라. 아직 오월의 상처는 아프다.  촬영이 끝나는 오는 11월 이후 세트장의 운명은 미정이다. 제작사인 `기획시대’ 측은 “애초 11월까지 촬영하고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행정당국이나 오월단체에서 문화체험 마당이나 오월교육 공간으로 쓴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화려한 휴가>는 80년 5월 민중항쟁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사랑과 가족애를 그렸다. 안성기·김상경·차인표·이요원·이준기 등이 출연하며 현재 40% 촬영을 마쳤다. 내년 4월 개봉 예정.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 지금과는 많이 다른 충장로 입구. '관광약국' '허바허바사장' 등 친숙한 간판이 눈에 띈다.td>
▲ 반독재 반유신운동의 한 거점이었던 YMCA건물도 재현됐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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