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도움 필요한 어르신들 연락만 주세요˝

입력 2018.03.21. 08:38 수정 2018.03.21. 08:39 댓글 0개
연중기획 동행-따뜻한 세상을 만듭시다 무등&나눔>>상무2동 보장협의체 '쌍쌍일촌 맥가이버'
전기·설비 20년 경력 재능 살려 지역민에 봉사
몸 불편한 어르신들 위해 150가구 리모콘 설치
협동조합 설립…민관협력 거버넌스 활동 기대

20일 광주 서구 유덕동 박모 할머니 집에서 상무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쌍쌍일촌 맥가이버'가 전등 리모콘을 설치하고 있다.

문밖까지 나와 환송하는 박 할머니를 뒤로 하고 '맥가이버'들은 다음 집으로 향했다.

서 위원장은 "어르신들 집을 매번 찾다보니 힘이 약하셔서 칼을 못 가시더라"라며 "이렇게 생활 속에서 불편한 점들을 해결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배낭에서 숫돌을 꺼낸 서 위원장은 썰렁한 날씨 속에서 구슬땀이 맺히도록 식칼을 힘주어 갈자 칼은 이내 반짝이며 본래의 예리함을 되찾았다.

박 할머니의 식칼은 날을 간 지 어찌나 오래됐는지 서 위원장이 손가락을 대고 문질러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을 만큼 무뎠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서 위원장은 주방에서 식칼을 찾았다.

박 할머니는 "어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노인네 집에 와서 이러코롬 좋게 해주고 간당가"라며 "참 고맙네 고마와"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신기한 마술이라도 본 듯 박 할머니는 이빨을 환히 드러내며 어린 아이처럼 반겼다.

10분도 되지 않아 설치가 끝났고 박 할머니의 방 전등은 이제 스위치를 직접 누르지 않고도 리모콘으로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됐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보다 더 빠른 손으로 서 위원장과 배씨는 전등 뚜껑을 열고는 전선을 이리 저리 휘감더니 리모콘 장치를 설치했다.

그렇지 않아도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할머니는 서 위원장의 말을 듣고도 긴가민가 했다.

 "어머니 전깃불 켜기 불편하시다고 해서 바꿔드리러 왔어요. 이제 불 키러 안 일어나셔도 돼요."

박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 썰렁한 냉기가 엄습했다. 서 위원장은 웃으며 박 할머니에 인사를 건넸다.

첫 목적지는 박모(85) 할머니 집.

기동성을 위해 유덕동 주민센터가 마련한 차량을 타고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에서 내린 '맥가이버'들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서 위원장은 "행정 기관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목록을 받고 있는데 대부분 홀몸 노인들이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말했다.

모두가 1930년대에 태어난 고령의 어르신들이고, 홀몸 노인이며, 기초생활 수급자다.

오늘도 유덕동 주민센터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시민' 5명의 목록을 전달받았다.

전기 기술자인 차씨는 '아이언맨'처럼 온갖 전기 설비에 능통하다고 했다.

서 위원장이 슈퍼 히어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속 '캡틴'과 같이 호탕하고 밝은 이미지로 팀의 중심을 이끈다면 배씨는 '캡틴'의 절친 '윈터 솔져'처럼 차분하고도 우직하지만 재빠른 손놀림으로 서 위원장 곁에서 힘을 보탠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열정은 차씨의 공백을 채우고도 충분했다.

원래 '쌍쌍일촌 맥가이버'는 세 명으로 구성됐지만 또 한 명의 '맥가이버' 차영수(56)씨는 오늘 아쉽게도 개인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다.

상무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쌍쌍일촌 맥가이버'의 맥가이버 서기수(59) 위원장과 동료 배한근(53)씨.

아직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광주 서구 유덕동주민센터를 방문하자 빨간 조끼를 입은 두 명의 남성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20일 오전 9시.

◆욕창·와상 환자위해 설치한 '전등 리모콘'

"행동하고 동행하니 내 인생도 바뀌더라구요."

발품을 팔며 돈도 받지 않고 재주를 선보이는 이유를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 맥가이버는 슈퍼히어로처럼 복지 행정의 손이 닿지 않는 골목 골목 깊숙한 곳까지 동분서주하며 우리 사회 복지 사각의 틈을 열정과 관심으로 메꾸고 있다.

자신들의 분야에서 20년간 쌓은 베테랑의 경험을 아낌 없이 재능 기부하는 상무2동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중 하나인'쌍쌍일촌 맥가이버'다.

여기 지역 사회에서 매일같이 봉사활동을 하다 아예 직업이 바뀐 남자들이 있다.

서기석 위원장이 할머니에게 전등용 리모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더 많은 봉사 동참할 동료 언제든 환영

 지난 2014년 12월 5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촉장을 받고 봉사활동을 시작한 서 위원장은 지난해 3월 27일 '쌍쌍일촌 맥가이버' 발대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다 욕창과 와상으로 누워서 생활하던 한 어르신이 전등을 켜기 위해 힘겨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간단하게 설치만 하면 편하게 지내실 텐데'라고 여겨 실천한 것을 시작으로 벌써 150집에 리모콘을 전부 사비로 설치해 줬다.

이뿐만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한푼이 아쉬워 전파상을 찾거나 AS를 받지도 못하는 어르신들 집의 전구를 갈아끼워주거나 고장난 문고리나 수도꼭지·방충망을 교체하는가 하면 낡은 식칼도 새 식칼처럼 갈아준다.

얼마 전에는 양 3동 어느 한 집에서 샷시가 오래돼 뻑뻑한 문을 고쳐줘 어르신들의 찬사를 받은 일이 뿌듯한 기억이다.

이날 세번째 방문한 집에서도 문고리가 고장났다는 하소연을 듣고 손을 보다 자재를 마련해 다시 방문해서 고쳐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해달라는 것을 금방 해주지 못할 때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자꾸만 '맥가이버'들의 마음에 걸린다.

20년 넘게 건설 현장에서 종사한 서 위원장과 샷시 업체를 운영하던 배씨, 전기업자 차씨는 건강상 생업을 쉬고 잠시 시작한 봉사활동이 생업이 됐다.

상무2동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양동, 화정1동, 화정 3동 등 서구의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 9개 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의 봉사활동을 상무 2동에서 시작해 서구를 넘어, 광주 전체로 넓혀가고 싶은 포부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 협동조합 '맥가이버'를 설립해 리모델링 사업도 병행하며 활동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관공서로부터 사례 공유를 통한 민관협력 거버넌스 체제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밖에도 '쌍쌍일촌 맥가이버'는 언제나 손재주 좋은 '능력자'들의 동참을 기다린다고 했다.

서 위원장은 "소주 한 잔 안먹을 시간과 돈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며 "더 큰 기쁨을 위해 언제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참여를 당부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naver.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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