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골목에 녹아든 역사·문화·종교 등 정신적 재생돼야

입력 2018.03.14. 08:56 수정 2018.04.11. 11:53 댓글 0개
무등일보·도시설계학회 지식나눔센터 공동기획-도시재생,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Ⅰ부. 광주 도시재생의 진단과 방향 (3)양림동과 문화관광자원화 사업上
역사문화마을

양림동의 역사는 광주의 역사다. 남장로 교회 목사들은 구한말인 1895년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그들은 우리들도 배척했던 나환자 곁으로 왔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이었던 고아들을 돌보고, 도시빈민들에게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개인 재산이며, 값진 자료, 그리고 봉사와 희생정신을 한국에 남기고 떠난 언더우드(H. G. Underwood)가문과 같이 광주에 남기고 갔다. 그들은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1912~2003) 여사를 낳았고, 나환자의 아버지 최흥종(崔興琮;1880~1966) 목사를 길렀다.

양림동에는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1호인 광주·전남지역의 교육발전에 이바지한 이장우 가옥이 있다. 2호인 최승효 가옥도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무등산의 사계를 감상할 수 있는 조망권을 확보하고 방풍득수(防風得水)할 수 있는 광주 최고의 주택입지였다.

광주의 관광과 문화적 자산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양림동은 광주의 자존심이다. 광주의 소년운동가이며 첫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김태오(金泰午, 1903~1976)를 탄생시킨 숭일학교의 담장도 그대로 남아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로 지정된 '팔로군행진곡'을 창작하고, 중국의 3대 음악가로 꼽히는 '정율성(鄭律成, 1914~1971)'의 생가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몸으로 실천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사택

역사와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근대 광주의 본향인 양림동에 도시재개발이 시작된 것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택공사(현재 LH)에 의해 광주양림교회(3·1만세운동길 10번지 소재)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섬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지역발전을 가로막았던 철길이 걷치자 마자 2천세대의 아파트가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양림동에 들어왔다. 1차 순환도로와 양림동을 가로지르는 도로인 '백서로'를 중로급 수준의 도로(현 정율성로)로 연결하였다. 곡선형 보행로는 격자형 자동차 도로로 대체되었다. 땅값은 오르고 자동차 교통은 편리해졌다. 자동차 접근을 막고 있었던 철도라는 댐이 무너지자 차량들이 쏟아져 들어와 도로에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소중한 활동공간을 자동차에게 양보해 주어야만 되었다. 광주광역시와 남구청, 그리고 지역유지들은 국비를 지원받아 도로를 뚫고,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해 줄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창작소

2천세대 아파트 건설이 완공될 즈음에서야 학계에서는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었다. 양림동에는 마을지킴이를 자처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다양한 동아리가 조직돼 있다. 사회적 자본이 탄탄하다는 말이다.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재생은 사회적 자본을 체계화하고 엎그레이드한 거버넌스를 통하여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다양한 이해집단간 조정을 통하여 상향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천세대의 양림 1구역이 준공되기도 전에 양림2구역 거점확산형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제2차 양림동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에는 양림동 역사문화자원의 보고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거점지역에는 중·저층 아파트를 건립하고, 동명동과 다르게 이장우, 최승효 가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체지역을 한옥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어느 계획에도 100여년이 넘게 형성된 우리 내 삶과 그 궤적을 담고 있는 보행문화의 꽃인 골목길을 자본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면, 양림2구역 거점확산형 주거환경개선사업 조감도)

양림교회

한편 2010년부터는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일선교사 사택을 보수하고, 커뮤니티 센터도 건립하고, 최근에는 골목중심의 양림역사문화길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입주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골목을 중심으로 조성된 '펭귄마을'이 핫플레이스이다. 전국의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양림동의 재생은 우리나라 도시재생사업의 원조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선교사들의 유적, 즉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도시재생이다. 종교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유산을 갖고 있어 다른 지역과 달리 문화적 재생이 강조되어야 한다. 재생은 주민참여를 통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주민 자율성에 기반한 지속성을 담보하는 사업이어야 한다. 마을이라는 책읽기 공부를 위해 최소한 마을에 대한 역사와 자원, 그리고 이웃집에 대한 둘러보기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사직도서관이 2005년부터 시작한 주민교육프로그램이 양림동의 사회적 자본형성에 기여한 바 크다. '우리동네 곳곳은 문화유산'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은 우리가 지금 주민자치역량강화를 위해 쓰고 있는 도시재생대학의 본보기이다. 주민들이 함께 동네를 둘러보고, 곳곳에 있는 문화유적에 대해서 알아보고 점심을 먹고 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마을알기 교육프로그램은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양림문화사랑회'와 마을단위 공연예술을 선보인 '사직공원비둘기들'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힘을 합하여 양림마을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개발행위에 대하여 대응하고 있다.

조감도

양림동은 누가 뭐라해도 기독교 종교마을이자 성지이다. 성지를 이루는 선교사들의 희생과 봉사, 돌봄과 섬김,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계승한 교단이 함께 어울려 있다. 이 지역에 씨앗을 뿌린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기 위한 사업을 3개 교단간의 아름다운 경쟁과 따뜻한 협력을 통하여 확대·발전시키는 것도 도시재생의 중요한 한 축이자 핵심이다.

수준 높은 문화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준다. 그들의 봉사와 희생, 그리고 아름다운 삶은 우리를 일깨워 준다. 그분들의 삶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그분들의 체취가 살아 숨쉬는 장소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도 준다. 그것은 상품이 아니라 영성이다.

양림동의 재생은 이러한 정신의 재생, 아니 오기원길과 서서평길이라는 단순한 도로명이 아닌 우리 속에 다시 살아나는 이들의 부활이 진정한 도시재생의 길이 아닐까?

류영국 한국도시설계학회 지식나눔센터장

 전남대 건축과 박사출신으로 10년 동안 광주시 도시계획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일상과 건축, 도시 관광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 등에 관한 학문적 실천적 사유를 바탕으로 작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지오시티'는 첨단지리정보(GIS)를 활용한 과학적인 도시계획 선두주자로 꼽힌다. 한국도시설계학회 창립, 한국도시설계학회 지식나눔센터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광주·전남 지회장, 광주시 양동도시재생사업 총괄코디 등을 역임하며 도시설계와 관련 정책입안과 실행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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