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눈물겨운 그 날이 오면

입력 2018.03.13. 15:45 수정 2018.03.13. 16:12 댓글 0개
김현옥의 음악이 있는 아침 작곡가/달빛오디세이 대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1791년 늦은 봄, 모차르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서명이 없는 편지를 받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마라는 내용과 함께 레퀴엠작곡을 의뢰한 편지였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당시 몹시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지독한 우울증과 환각에 시달리면서, 이 곡이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레퀴엠(Requiem)은 ‘안식’을 뜻하는 라틴어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미사곡을 말한다. 제3부 여섯 번째 곡인 ‘라크리모사’, 눈물의 날의 8번째 마디에서 음표는 멈춰있었고, 그는 끝내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 해 12월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 콘스탄체는 다급해져 제자 쥐스마이어에게 악보를 완성하게 하였고, 발제크 백작에게 악보를 넘겨, 나머지 대금도 받았다. 익명으로 작품을 의뢰한 사람, 실제로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라는 사실, 이것은 1세기가 지난 후에야 밝혀졌다. 세상을 떠난 아내의 기일에 맞추어 자신이 작곡했다고 하기 위해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같은 해,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비롯, 오페라 ‘마술피리’, ‘클라리넷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쓰는 가운데, 틈틈이 레퀴엠을 작곡해야만 했다. 레퀴엠 작곡에 대한 사례의 절반을 미리 받았기 때문이었다. 씀씀이가 헤펐던 콘스탄체 때문에 재정적으로 쪼들리면서 죽을 때까지 빚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려진 것처럼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과로사가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 그의 유해는 묘비도 없이 다른 주검들과 함께 구덩이에 던져졌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묘지 등 여러 곳에 있는 모차르트 묘는 모두 가짜이며, 시신은 지금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안타깝다.

모차르트의 집. 음악소리가 들리고, 창문에는 부인 콘스탄체와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이 비친다. 이것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는 행복한 모차르트의 모습이다. 실제로는 추운 겨울, 땔감이 없어 몸에 열을 내려고 춘 것인데 말이다. 흔히 베토벤은 고통 속에 살았던 사람, 모차르트는 밝고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음악은 인생을 지나면서 겪어야 할 슬픔이나 고뇌가 깊이 배어있다. 그 정도 쯤이야, 그것이 없으면 어찌 인생이겠어 라는 듯, 내공 있게도, 거뜬히 소화시킨 후의 아름다움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선명한 색채에 새겨있는 슬프고도 처절한 인간미. 섬세하고 우아한 선율. 그의 음악은 물 흐르듯 언제나 부드럽다. 어느 곳, 어느 때라도 그 천진함 속에 숨어있는 고결한 정신적 고뇌가 느껴진다.

그의 음악은 밝고 쾌활하여 태교 때나 식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모차르트를 결코 밝고 쾌활하게만 연주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인생에서 오는 깊은 고뇌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들은 모차르트음악을 마지막에 나오는 관문이라고 할 만큼 어렵게 생각한다. 악보는 쉽지만 그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에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가혹한 현실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곡가들 중에 자유를 선언한 최초의 프리랜서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귀족이나 교회에 몸을 담고 있었고,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는 대신 그들에게 굽실거려야 했고, 굴복해야 했으며 자유가 없었다. 모차르트는 자유를 위해 스스로 힘든 삶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모차르트의 위대하고 주체적인 인간성이 있는 것이다. 불안하기에 자유인 것을 왜 진즉 알지 못했을까. 자유가 있기에 인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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