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숙주나물

입력 2018.03.12. 15:14 수정 2018.03.12. 15:21 댓글 0개
이종주의 약수터 무등일보 논설실장

우리가 먹는 반찬 중에 가장 빨리 쉬어버리는 것 중의 하나가 ‘숙주나물’이다. 숙주나물은 녹두로 싹을 틔운다. 메밀로 싹을 틔우면 메밀나물, 산에서 자라는 취나물의 어린 잎을 따서 데친 후 말리면 취나물이라 하는데 숙주나물만 유독 녹두나물이라 하지 않고 숙주나물이라 한다.

숙주나물에 관한 기록은 중국 원나라 때 문헌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 ‘두아채(豆芽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두아채는 녹두를 깨끗이 씻어 물에 담궈 불린 뒤 항아리에 넣고 물을 끼얹는 방법으로 키운다. 싹이 한 자 쯤 자라면 껍질을 씻어내고 뜨거운 물에 데쳐 생강·식초·소금·기름 등을 넣어 무쳐 먹는다. 우리 나라에서 숙주나물을 재배하는 방식과 요리 방법도 이와 같다. 숙주나물이 원나라와 교류가 많았던 고려 때 들어온 것임을 짐작케한다.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조선시대다. 조선 초기까지만해도 ‘녹두나물’이라 했다. 그 러다 조선 제6대 왕인 어린 단종을 숙부 수양대군이 폐위시킨 뒤 강원도 영월 청령초로 유배를 보내고 결국은 사약을 내려 독살하는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단종을 폐위시킨 수양대군은 제7대 임금(세조)으로 즉위했다. 신숙주(申叔舟)는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해 죽게했다. 여섯 신하는 우리가 흔히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르며 충성심을 기리는 인물로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일컫는다. 김시습, 원 호, 이맹전, 조 려, 성담수, 남효온 등은 ‘생육신(生六臣)’이라 한다.

당시 성삼문과 도승지(都承旨·조선시대 승정원의 6승지 중 으뜸 )벼슬을 하던 신숙주는 절친이었다. 승정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한다. 도승지는 왕의 비서실장 격이다. 쿠테타가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서 성삼문 등 사육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종의 폐위를 반대했다. 마땅히 단종을 지켜야 할 도승지 신숙주는 세조의 편에 섰다. 말하자면 비서실장이 쿠데타에 동조를 한 셈이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신숙주를 한나절도 지나지않아 변하는 녹두나물 같다고 손가락질 하며 이때부터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숙주나물을 짓이겨 만두소를 만드는데, 신숙주를 나물 짓이기듯 하고 싶은 마음도 담겼다.

신숙주가 원래 충신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그의 변심은 훨씬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요즘 세상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사람,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 한점 의심없이 지지하고 기대했던 사람들의 추한 민낯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정신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다. 차라리 숙주나물이라면 고추장 듬뿍 풀고 참기름 한숟갈 쳐서 식은밥과 함께 냄비에 비벼먹기라도 할텐데. 자고 일어나면 등장하는 이 새로운 ‘숙주’들은 답이 없다. 곤쟁이젓이라도 만들어버리고 싶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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