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궁합(宮合)

입력 2018.03.08. 15:23 수정 2018.03.08. 15:27 댓글 0개

배우 심은경과 이승기가 주연을 맡고 홍창표 가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궁합(宮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뒤 단숨에 100만 관객을 훌쩍 넘겼다. 영화 궁합은 조선 최고의 역술가 서도윤이 혼사를 앞둔 송화옹주와 부마 후보들 간의 궁합풀이로 조선의 팔자를 바꿀 최고의 합을 찾아나가는 역학(易學) 코미디물이다. 지난 2013년 9월 개봉해 9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관상’에 이은 두번째 역학 영화인 셈이다.

궁합은 흔히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가 생년월일과 시간을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맞춰 부부로서의 길흉(吉凶)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12지(支)에 따른 겉궁합과 오행에 따른 속궁합이 있다. 신랑집에서 사주(四柱)를 보내면 신부집에서 사주를 펼쳐본 후 배우자로서 두 사람의 적격 여부를 가린다. 점괘가 좋으면 신부측에서 연길(涓吉)이라고 쓴 봉서인 택일단자(擇日單子)를 신랑측에 보낸다. 혼인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혼인성립에 필요한 절차의 하나로 궁합과 택일을 중시했다. 사주와 오행에 살(煞)이 있으면 혼인하지 않았을 정도다.

궁합을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중국(中國) 한(漢)나라 혜제(惠帝) 왕 때다. 혜제는 실권이 없었고 어머니인 여후(呂后)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흉노(凶奴)라는 오랑캐가 세력이 커지면서 한나라 공주를 아내로 달라고 요구했다. 공주를 흉노에 시집보내기 싫었던 여후는 계책을 짜냈다. 바로 궁합법이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공주와 흉노의 궁합을 보니 공주가 젊은 과부가 될 상인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공주가 젊은 과부가 된다는 것은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의미로 흉노에 큰 화가 될 게 뻔했다. 흉노는 혼인을 없었던 일로 했다.

당시 만들어진 궁합법이 구궁궁합법(九宮宮合法)이다.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는데 이 법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뒤로 오행궁합법(五行宮合法), 구성궁합법(九星宮合法) 등이 생겼다. 요즘은 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궁합법이 나왔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궁합을 보기 시작했는 지는 문헌에 나와있지 않다. 다만 고려시대 중국유학을 다녀왔던 귀족들에 의해 전파됐고 조선시대에 그 이론과 학문이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즘도 궁합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혼이 이뤄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특권층에서 더욱 그렇다.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들이 재미삼아 궁합을 맞춰볼 수는 있겠지만 혼인의 성사여부를 궁합의 좋고 나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궁합이 학문으로서 나름의 체계와 법칙과 통계를 가지고 있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했지만, 지금은 얼굴도 모르고 혼례를 올리던 시절이 아니다. 사전에 서로를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겉궁합이건 속궁합이건 말이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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