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할머니 승소하시는 날 돼지 잡고 잔치 하시게요”

입력 2018.02.28. 18:12 수정 2018.02.28. 18:19 댓글 0개
[무등&나눔]4년째 근로정신대 할머니 찾는‘광주아너스클럽’회원들
“외로운 싸움 계속하시는 분들 위로해 드리고 싶어 시작”
독거노인·지역아동센터·천원밥상에 손길 건네며 희망 전파
광주 청년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광주 아너스클럽' 회원들이 지난 27일 광주 서구 양동의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방문해 위로하며 손을 맞잡았다.

“워메 할머니 잘 계셨어요. 저희 왔어요.”

“아이고 어찐다고 또 이렇게 왔으까, 어서들 오소.”

99주년 3·1절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광주 서구 양동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집.

사람 4명이 누우면 꽉 찰 좁다란 방에 젊은 청년들 열댓명이 들어서자 금새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은 4년 전인 2015년부터 회비를 모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비롯, 독거노인들을 보살피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광주아너스클럽’회원들이다.

평일이었기에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20여명 가까운 청년들이 양금덕 할머니를 뵈러 선뜻 모였다.

청년들은 어깨에 지고 온 쌀 3포대와 계란, 고추장 등 식료품을 내려놓고 양 할머니의 집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겨우내 동파로 얼었던 화장실이 잘 내려가는지, 난방은 문제가 없는지, 외풍은 들지 않는지 등 살피고 나서야 자리에 둘러 앉았다.

양 할머니도 이따금씩 찾아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청년들이 반갑기만 하다.

벌써 나이가 아흔인 양 할머니의 건강이 혹여 악화됐을까 회원들은 시골 어머니를 챙기듯 이것 저것 물었다.

밥은 잘 드시는지,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말씀은 잘 하시는지.

그렇지 않아도 고령인 양 할머니의 건강은 좋지만은 않았다.

양 할머니는 “담석이 생겨서 겨우내 배가 아파서 미음을 겨우 목으로 넘기고 그랬다”며 “나이가 먹어서 기운도 없지만 미쓰비시 재판이 끝날때까지 죽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광주 청년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광주아너스클럽'이 지난 27일 광주 서구 양동의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께 전달할 쌀을 나르고 있다.

원래 회원들은 할머니가 1년에 드실 수 있는 양을 계산해 20㎏ 쌀 5포대를 전달했었다.

하지만 고령에 식욕이 많지 않으신 할머니가 이마저도 다 드시지 못하자 쌀을 줄이고 대신 부식을 더 늘려 가져오고 있다.

모처럼 집이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자 양 할머니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광주아너스클럽 회원들이 양 할머니를 비롯해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챙긴 것은 4년 전부터다.

광주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30~40대의 회원 50여명은 비정기적으로 해 오던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해 오자고 뜻을 모았다.

정기 모임이 있을 때마다 회비 5만원씩을 모았고 한 달에 하루 봉사활동에 나서자고 결의했다.

그러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알게 됐고 시민모임을 통해 2015년 3월 6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첫 만남을 가졌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은 할머니들이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와의 법정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 생계도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많은 걸 해 드릴 순 없겠지만 최소한 드시는 것 문제는 없도록, 말동무라도 해드리자”고 생각에 시작된 이들의 방문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봉사는 현재까지 계속돼 오고 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번 매월 첫째주 금요일 오후 2시에 하던 일을 잠시 접고 모이고 있다.

10여명에서 많게는 30여명이 모이는 통에 이들이 나타나는 날은 잔치가 벌어진듯 떠들썩하고 좁은 할머니 집에 모두 들어가지 못해 골목길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에 참여는 계속되고 있다.

또 광주아너스클럽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 뿐만 아니라 광주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나 양로원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말벗이 돼 드리는가 하면 광주 나눔의 상징인 ‘천원 식당에도 손길을 건넸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김남순 할머니는 아너스클럽이 방문하기 하루 전에 돌아가시는 등 2015년부터 4명의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상처를 미처 끊어내지 못하고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고령이 대부분이고 남은 할머니들 가운데도 홀로 살다가 요양병원에 2명이 입원해 있는 상태다.

회장인 고재현(47)씨는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어린 시절 고초를 겪으신 기억을 평생에 안으신 할머니들이 아직도 재판으로 고생하시는 걸 알게 됐다”며 “이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겠지만 우리가 이 할머니들의 식사라도 마련해 드리자는 마음에 다들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도 가족처럼 찾아오는 이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양 할머니는 “자식처럼 이렇데 들여다봐주니 참말로 죽어도 원이 없다”라며 “나보다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인데 이렇게 도와주니 나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베풀어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다시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회원들은 양금덕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꼭 잡고 “할머니 재판 이기면 돼지 잡고 잔치를 열게요. 120살까지 꼭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고 양 할머니도 연신 “그래야지, 그래야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서충섭기자 zorba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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