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양림동의 오방 최흥종 목사 기념관 착공을 생각하며

입력 2018.02.18. 18:00 수정 2018.02.18. 18:05 댓글 0개
한희원 아침시평 한희원미술관 관장/화가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붉은 화로 속에 떨어진 한 점의 눈송이다

진흙 소가 물 위를 쟁기질 하고 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 진다

‘홍로일점설’은 서산대산(1520~1604) 임종게송 중의 한 구절이다. 붉은 불이 타오르는 화로 속에 한 송이 눈송이가 떨어졌으니 스스로는 인생이 다사다난 했다고 생각할지언정 죽음을 앞에 두고서는 순식간에 사라진 꿈같은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2018년 무술해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음력설이 지나니 세월이 유수같이 흐름을 실감한다. 유난히 길고 차가왔던 올 겨울도 제 풀에 꺾여 봄꽃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섬진강의 매화가 한 송이씩 피고 눈 속에 붉은 동백꽃이 툭 떨어지면 가슴은 벌써 봄을 맞이하는 환희와 나이가 한 살 더 들어가는 서운함이 겹친 묘한 이중적 감성에 빠져든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매일 보는 자신의 모습이니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와 이마의 주름을 보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란다. 인생의 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은 비록 짧고 꿈같을지언정 지나온 생의 자취를 돌아보면 후회하고 아픈 일들 투성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사람의 심연에 있는 허무의 구멍은 돈이나 권력, 쾌락으로는 메워지지 않고 영적인 충만함으로 메워진다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는 경쟁과 탐욕, 인간성을 상실하는 부의 집착으로 허무라는 구멍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근대역사문화마을인 양림동에 오방 최흥종 목사의 기념관이 건립되는 일은 이를 계기로 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방 최흥종 목사의 기념관은 양림동에 건립된 유진벨 선교사 기념관의 옆에 2018년 1월 31일 착공식을 해 2018년 5월 중에 완공될 예정이다.

의향과 예향이라 불리는 광주는 시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광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예술인과 의인을 기리는 장소를 조성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시인 김현승, 박용철, 화가 오지호 등의 예술인의 문학관과 미술관이 없어 예향으로서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광주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통영에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문학관, 화가 전혁림 미술관, 음악가 윤이상 음악관이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뿌리정신을 기리고 찾는데 인색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양림동에는 유진벨선교사 기념관, 조아라여사 기념관 이번에 오방 최흥종 목사의 기념관이 건립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방 최흥종 목사는 1879년 태어나서 1904년 25세때 양림동 유진벨 선교사의 임시 사택에서 드린 첫 예배때 기독교에 입교했다. 포사이드 선교사를 도와 나환자의 치료에 헌신했고 3·1운동때는 전라남도의 총책으로 만세 시위를 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의제 허백련과 같이 삼애원을 설립해 농촌지도자 육성에 힘쓰기도 했다. 특히 나환자와 폐결핵 환자를 극진히 보살펴 1932년 광주에서 나환자 150여명을 모아 서울 총독부로 향하는 ‘나환자 시위행진’을 주도 했다.

오방은 집안의 일, 사회적 체면, 경제적 이익, 정치적 활동, 종파적 활동의 집착을 떨어낸다는 뜻으로 지상의 일에서 떠나 오직 하나님 속에서 자유스럽게 살겠다고 했으니 지금의 우리의 여러 사회적 현상으로 보면 우리시대 존경해야 할 분이다.

앞으로 광주에서는 광주의 정신적인 모체가 된 인물을 기리는 장소를 설립하고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없어져 버린 유적지를 발굴 보전해야 할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출발점을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점점 사회의 표본이 되는 위인을 찾아가 어려운 시절일수록 이런 일은 후대에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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