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민심(民心)

입력 2018.02.13. 18:05 수정 2018.02.14. 08:22 댓글 0개
김옥경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부장

조선시대 대표적 성군인 성종(成宗)은 한두 명의 무예별감(경호원)만 데리고 민가를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다.

어느날 밤 성종은 운종가(지금의 종로) 광통교 위를 지나다 다리 밑에서 한 백성을 만났다. 경상도에서 온 숯장수 김희동이었다. 여관을 잡지 못해 다리 밑에서 밤을 새던 김희동은 "우리 임금님이 어질고 착해 백성들이 잘 삽니다. 그래서 해삼과 전복을 드리려고 올라왔는데 혹시 사시는 곳을 아시면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다. 감명을 받은 성종은 모른 체하고 동행한 무예별감 집에 그를 재워준 후 다음날 궁궐로 불러 '충의초사'라는 벼슬을 내렸다.

'미복잠행(微服潛行)'을 즐긴 성종의 대표적인 일화다. 조선시대 군주들은 백성들의 고충과 민심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남루한 복장으로 미복잠행을 하곤 했다. 미복잠행은 성군이 되기 위한 하나의 덕목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 고충을 해결해 주거나 국정 운영에 반영하기도 했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도 잠행에 나섰다가 자금성 앞 시장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이름 없는 한 만두가게를 찾았다. 건륭제가 주인에게 혼자 문을 연 이유를 묻자, 주인은 "혹시라도 자금성을 찾는 백성이 있어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면 장사치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건륭제는 며칠 뒤 이 가게에 '도성 내 유일한 곳'이란 의미의 '두이추(都一處)' 편액을 자필로 써서 선물로 보냈으며, 두이추는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중국 요 임금 역시 백성들의 생활이 궁금해 자주 미복잠행을 나갔다. 요 임금은 동네 어귀에서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들었지만 확신이 서질 않아 다른 마을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다른 마을에 노인이 나무 그늘에 앉아 배물리 먹은 배를 두드리고, 땅바닥을 치면서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궁으로 되돌아갔다.

톨스토이의 한 소설에는 허름한 복장을 하고 민생 투어에 나선 부왕을 따라 나섰다가 남루한 차림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인이나 훌륭한 지도자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 현장의 소리인 민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설 명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설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풍향계가 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13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120일간의 레이스가 본격 시작돼 선거에 출마하는 입지자들에게 이번 설 밥상머리 민심 확보는 사활을 건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단순히 얼굴만 내미는 생색용으로 현안을 챙기기 보다 지역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바뀌길 원하는지 제대로 살펴볼 준비가 됐느냐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김옥경 경제부장 uglykid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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