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이재용 재판 재벌 봐주기 소리 듣지 않으려면

입력 2018.02.13. 15:32 수정 2018.02.14. 08:24 댓글 0개
오광표 법조칼럼 법률사무소 미래/변호사

세기의 재판이라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재판 선고가 있는 날 한 신문사 만평이 사람 마음을 대변한다. 신문사 만평은 지나가는 시민들 가슴이 뻥뚫려 있었다. 아마도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재용의 판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한다. 그림처럼 가슴 한 켠이 뻥뚫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법조인 한사람인 필자가 이런 기분인데 대다수 국민 감정은 오죽했겠는가.

서울 고법 형사 13부(재판장 정형식)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었던 핵심적인 부분들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의 양형사유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과 의미에 관해서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판단한 것이다.

특검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박전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뇌물을 준 정경유착 사건의 전형이라고 했고, 원심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최고 권력자인 박 전대통령이 삼성경영진을 겁박해 삼성이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한 피해자로 본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이라는 삼각축이 형성한 한국의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다. 삼성은 이재용의 승계 작업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이 필요했다.

이재용의 원활한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이 찬성해 국민의 미래 생활연금 1000억원 가량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 일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구속수감 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 판결은 “직무관련성과 대가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이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었으니 문형표 장관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셈이 됐다.  

또한 항소심은 청탁에 대해서도 정치권과 뒷거래로 문어발식 확장이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전형적인 정경유착은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국민의 법 감정과는 괴리감이 크고 과거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된다. 과거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사건에서 청탁의 직접적인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도 뇌물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당사자임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백번 양보해 이번 사건에서 정경유착도 없고, 청탁도 없었다하더라도 36억 가량의 마필과 차량 등을 뇌물로 준 것은 인정되었다. 삼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굴지의 재벌로서 법과 상식이 통하는 경영을 할 책임이 있는 기업이다. 이런 초대형 글로벌 그룹이 대통령이 겁박한다고 수십억원을 그냥 퍼줬다는데 이를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런 순진함을 믿어 달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거액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대기업 총수 부정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난 만큼은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우스갯 소리로 “대기업총수가 횡령이나 배임으로 기소되면 1심에서 5년을 선고하고, 2심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3년으로 줄여줘 집행유예를 선고 한다”는 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뇌물 1억이면 많게는 10년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 반면 이재용은 36억 가량의 마필을 뇌물로 제공해도 집행유예로 나오는 판이니 “유전무죄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촛불로 새로운 시대를 만든 마당에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는 국민들의 기대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법원에서 판단하는 부분은 국민들의 법감정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법리적인 부분을 제하더라도 유죄로 인정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나 공정히 적용 받아야 마땅하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믿는 국민이 존재하는 한 이재용 재판은 또다른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유전무죄’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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