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우리 학생들의 학업 탄력성

입력 2018.02.12. 15:27 수정 2018.02.12. 17:32 댓글 0개

한때 한국 사회에서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희망의 사다리가 있었다. 이른바 ‘흙수저’들도 실력양성을 통해 ‘은수저’ 단계를 거쳐 ‘금수저’로 이동할 수 있음을 대변해주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례로 지금은 폐지된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불철주야 서적과 씨름했던 이들의 고난행(行)이 대표적이라 할 만 하다. 그들의 눈물젖은 합격 후기는 세상의 위로와 함께 대다수 보통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의 울림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그런 희망의 사다리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듯 한 분위기다. 반면‘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 ‘한번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저’라는 구별 아닌 구별이 씁쓸하게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한 상태다.

우리 사회의 이런 양상을 국제기관의 조사가 알려 주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 가정의 학생 중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조사가 그것이다. PISA는 조사 지역의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수학·과학 성취도를 점검해 이뤄진다. 이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가정이 어려운 ‘흙수저’출신 학생들 가운데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위 25%인 한국 가정 학생들의 PISA 결과, 3등급(Level 3)이상 상위권에 든 ‘학업 탄력적’ 학생비율이 36.7%(2015년)로 70개 조사 대상 지역 중 9위로 떨어졌다. 지난 2006년 52.7%(16%↓)로 2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추락이 아닐 수 없다. 학업탄력적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홍콩(53.1%, 2006년 52.5%), 마카오(51.7%, 2006년 37.9%), 40%대를 유지하는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일본 등과도 비교된다.

학업탄력적 학생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취약 계층 학생들이 어려운 가정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즉 학업성취도를 높일만한 의욕이 더욱 옅어졌음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아무리 노력한들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가는게 불가능해진 터에 그럴만도 하다.

양극화의 심화, 빈곤의 대물림은 어제 오늘 거론된 바가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했던 과거의 상황이 이를 더욱 공고히 해버렸다.

특히 최근 잇달아 불거지는 각 금융기관, 공·사기업의 채용비리는 청년들의 땀과 희망을 배신하고 그들을 좌절시키는 굴절된 사회 현상을 극명하게 대변한다. 들이댈 이런 저런 연줄과 빽에다 봉투나 가방, 박스 등에 담을 돈.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 이를 꿈도 못 꾸는 무능한 보통 학생·청년들의 학업 탄력성 비율이 낮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않는 미래는 우울할 수 밖에 없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