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진다’는 말의 참뜻

입력 2018.02.11. 13:48 수정 2018.02.12. 08:53 댓글 0개
박남기 아침시평 전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꽃이 지다라고 할 때 ‘지다’라는 표현은 전쟁이나 싸움에서 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전쟁에서 진 자는 모든 것을 내어놓고 떠나야 하고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듯이 꽃이 지면 꽃의 모든 권한과 자리를 빼앗고 그 자리에 승자인 씨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꽃에도 진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오픈백과, 「꽃이 지다」의 유래). 그런데 꽃과 열매는 서로 적도 아니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관계는 더욱 아니다. 꽃은 열매를 탄생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존재이고, 드디어 열매가 맺혀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되면 사라지는 존재이다. 따라서 꽃과 열매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보며 지다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조금 무리인 듯싶다.

역으로 싸움에서 ‘지다’라는 말이 꽃이나 잎이 지는 자연의 모습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싸움에서 졌을 때의 모습은 그 아름답던 꽃과 잎들이 졌을 때의 모습과 참으로 흡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지다라는 말의 의미를 비참한 패배로만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선인들이 굳이 꽃이 졌을 때의 모습을 빌어다가 경쟁에서 패했을 때의 모습을 묘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옛사람들은 꽃이 지면 참으로 볼품이 없지만 꽃이 진 연후에 그 자리에서 열매가 맺고 익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물론 꽃이 진다고 그 자리에서 모두 열매가 맺히고 익는 것은 아니다. 꽃은 지기 전에 벌과 나비가 찾아들어 수정이 되도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포기하면 그냥 시들게 될 뿐이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드는 것 즉, 포기하는 것이다. 진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하고 익히기[이기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옛사람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2008년 미국 대학 실내 육상경기 여성 600미터 예선전에서 2위를 하던 해더 도니댄(Heather Dorniden)이 400미터 지점에서 1위로 올라서는 순간 넘어졌다. 꼴찌가 된 그녀는 다시 일어나 폭풍처럼 질주하여 3위를 따라잡고 2위를 따라잡더니 결승선 바로 앞에서 1위를 따라잡으며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넘어졌던 선수가 결국 이겼다. 믿기 어려운 광경에 관중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만일 넘어진 순간 포기했더라면, 설령 일어섰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포기했더라면 결코 1위로 올라설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그녀 덕에 미네소타대학교는 그해의 챔피언이 되었다.

져야 열매 맺을 수 있고 나아가 이길 수 있다. 경쟁에서 졌을 때 낙담하고 포기하는 대신 그 결과로 내 안에서 익어가고 있을 열매를 찾아보자. 그 열매 찾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을 이기는 것이다. 마음속의 무지개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는 영원한 청춘임을 깨달으며 포기하는 대신 매일 제대로 지는 연습을 하자.

나를 지게 한 세상이 내가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존재임을 깨달으면 우리는 경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시들어가는 꽃 안에서 익어가는 새 생명을 발견하듯이 내가 질 수 있는 기회를 준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꽃이 피어나듯이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피어날 때에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윤회의 사슬도 끊을 수 있는 깨달음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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