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각자도생(各自圖生)과 정치(政治)

입력 2018.02.07. 16:38 수정 2018.02.07. 16:50 댓글 0개
이종주의 일침장설 무등일보 논설실장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한다는 의미다. 황폐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무술년이 갓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잠시 잊고 지냈던 이 재미없고 반갑지 않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은 순전히 정치판 탓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읊조렸었는데 통합이니 신당이니 하며 박터지게 싸우다 갈라선 국민의당 금벳지들을 보고 있자니 내 게으른 손이 절로 이 네 글자를 찾았다.

‘각자도생’이란 말이 참으로 피폐하고 고독한 것은 희망차고 풍요로운 시절에 회자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 나아가 국가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실망했을 때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각자도생이라는 성어가 4번 언급되는데 모두 다 난리통이었거나 융년, 대기근 등 나라가 극히 흉흉한 시기였다.

1954년 선조실록에는 ‘백성들이 장차 살육의 환난에 걸릴 것이니, 미리 알려주어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으로 몰래 전파하라’는 내용의 비변사(備邊司) 보고가 있다. 비변사는 조선 중·후기 때 의정부를 대신해 국정 전반을 총괄한 실질적인 최고의 관청을 말한다. 1627년에는 ‘종실(宗室·임금의 친족)은 모두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해야 할 사람인데 난리를 당하자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고 기록돼 있다. 전자는 임진왜란, 후자는 정유재란과 관련있다.

또 순조 9년인 1809년에는 흉년의 실상을 상소한 내용에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상소문에 적시된 흉년의 실상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나물을 베어먹고 풀뿌리를 캐먹다 결국 어미는 자식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와 결별하여 마을을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하는 참혹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종 때인 1866년에는 경상좌도의 조창(漕倉·국가가 징수한 곡물을 모아 보관하고 운송하기 위해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했던 창고) 운반선이 침몰된 것과 관련해 ‘배가 암초에 걸리자 각자 자기 살 궁리만 하였으니, 만약 간사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관청 보고 기록이 있다.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 때나 메르스 사태, 그리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며 ‘각자도생’을 떠올렸다. 지금은 어떤가? 혼밥, 혼술, 졸혼, 황혼이혼 등 ‘각자도생’의 유사어가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다. 시쳇말로 대세고, 혹은 현대인의 생존법이다. 공생이니 연대니 공동체니 하는 가치는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 선반 위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각자도생’의 반대말은 뭘까? 한 정치인의 말처럼(어쩌면 희망사항 이겠지만) 정말 ‘정치(政治)’가 반대말일까? 그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길 응원하지만 현실을 보면 동의어 같다. 국민의당이 웅변하고 있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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