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잔혹한 ‘정상가족’

입력 2018.02.05. 14:03 수정 2018.02.06. 10:15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는 지난달 북구에서 한 여대생이 아파트 앞에 버려진 아이를 구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한 여대생의 따듯한 마음이 탯줄도 마르지 않은 영아를 구조한, 얼마나 다행인 사안이었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여대생이 가족 몰래 출산한 아이로 밝혀졌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남자 친구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차마 가족에게 알릴 수 없어 임신사실을 숨겼다. 출산이 다가오자 언니 집으로 가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을 한 것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무책임 하다'는 둥 여대생과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쇄도한다. 다른 한편 그래도 아이를 돌본건 괜찮다는 온화한 시선도 있다. 무책임한 여성, 준비 안된 부모 운운하며 세태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영아유기사건을 생각하면 대중들의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글프고 아프다.
매번 아이를 버린 여성들에 대한 개탄과 비난은 난무한데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나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살아갈 방도에 대한 사회적 노력은 뒤따르지 않는다.
왜 여대생은, 여성들은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심지어는 아이를 유기까지 하는 것인지. 혹여 이들에게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변을 속이도록 조장한 진짜 범인은 따로 있는 건 아닌지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영아유기 사건의 대부분은 비혼 여성들에게서 일어난다.
이 사회에서 비혼 여성의 임신·출산은 법과 제도 등 어떠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없다.
'초저출산국'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온갖 정책이 난무하지만 이 모든 정책은 소위 '정상가정'의 여성들에게만 제공된다. 비혼 여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사회적 편견과 질시는 차치하고 그 흔한 '출산 장려금'을 신청하기도, 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
양육은 도저히 난망이다. 아이 딸린 비혼 여성이 일자리를 얻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찌어찌 일자리를 얻는다 한들 아이는 어찌할 것인가. 미혼모 쉼터가 있기는 하다. 말 그대로 출산을 전후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마련은 어불성설이다.
비혼 엄마들이 사회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이, 태어나는 아이들 역시 국가로부터 유기된다. 그렇게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은 보호소를 전전하다 이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입양(인간수출)'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초저출산국'이라며 호들갑스런 정책을 쏟아내면서 바로 옆에서는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우리사회의 맨 얼굴이다.
비혼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우리가 사실상 방치하고 유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아이 엄마에게 비난을 쏟아붓는 것으로 저마다의 고매함에 위로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사정이 이 지경이니 비혼여성의 임신은 거의 예비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다. 그녀들을 나락으로 떠밀지 않기위해서는, 순결한 생명이 다른 나라에 팔려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뒤따라야한다.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유럽처럼 가족의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생명에 대해 국가가 지원·보호해야한다. 비혼가정 아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 입양제도에 대한 보완,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법적 보장 등이 뒤따라야한다. 그런연후에라야 출산정책 운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여성들을 매도하고 비난하기 전에 그녀에게 아이를 버리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한 것은 아닌지, 정작 부끄러워해야할 사람은 우리자신이 아닌지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 영아유기의 공범들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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