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尹 참배한 열사들은 누구? 박금희·김용근·한강운 열사

입력 2024.05.19. 16:11 수정 2024.05.19. 16:32 댓글 0개
헌혈 후 귀가 중 총격에 숨진 여고생 박금희
독립운동가·한국전쟁 참전용사 김용근 선생
운전수로 항쟁 동참, 고문·감시 겪은 한강운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기념식 참석 직후 참배한 고고 박금희·김용근·한강운 열사.국립5·18민주묘지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기념식 직후 박금희·김용근·한강운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으로 기념식을 마무리하고 5·18 단체장들과 유족, 보훈처장 등과 함께 5·18 당시와 이후 숨진 희생자들의 묘소를 둘러보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윤 대통령이 참배한 이들은 헌혈 이후 귀가하다 계엄군의 흉탄에 숨진 고 박금희 열사, 독립유공자이자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이면서 5·18 당시 지명 수배중인 제자들을 도운 김용근 열사, 5·18 당시 경계 근무 도중 연행돼 고초를 겪고 숨진 고 한강운 열사 등 3명이다.

박금희 열사는 5·18 당시 춘태여상(현 전남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1980년 5월21일, 헌혈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16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차량 방송을 들은 박 열사는 택시를 타고 기독병원으로 향해 시위대 측 헌혈버스에 올라 헌혈에 동참했다. 박 열사는 헌혈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지원동 1번 버스 종점에서 광주~화순간 도로 봉쇄 작전을 위해 이동하던 제7공수여단의 총격전으로 인해 숨졌다. 현재 박 열사는 제1묘역 1-26에 잠들어 있다.

김용근 열사는 5·18 당시 지명수배된 제자들을 집에 숨겨줬다는 이유로 체포돼 6개월간 고초를 겪다 수감 후유증으로 인해 1985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7년 강진에서 태어난 김 열사는 일제강점기 민족의식 교육활동, 총독암살단 조직 혐의 등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고 한국전쟁에도 9사단으로 참전한 독립유공자이자 참전 유공자다. 김 열사는 전주와 광주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하다 1976년 유신반대 학생시위에 책임을 지고 교직을 떠났다. 김 열사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김용근 선생 민족 교육상'을 제정해 1995년부터 시상해 오고 있으며 현재 그는 제1묘역 3-16번에 잠들어 있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고 한강운 열사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한강운 열사는 5·18 당시 화물차 운전수로 일하다 항쟁에 동참했다. 그는 시위대 차량에 탑승해 시민들에게 시위 동참을 호소하고, 자신의 화물차로 시위대를 도청에 이송하는 역할을 했다.

한 열사는 1980년 5월27일 사직공원에서 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서다, 계엄군에 붙잡혔으며 상무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한 열사는 석방 뒤에도 가택 수색과 감시 등에 시달리다 2002년 41세를 일기로 숨졌으며 현재 제1묘역 4-73에 잠들어 있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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