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영화 1987과 선택 2018

입력 2018.01.31. 17:13 수정 2018.01.31. 17:37 댓글 0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스물 두 살 대학생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고문의 당사자들은 이 대학생의 무고한 죽음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의 첫 출발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예전의 관습대로 처리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증거를 인멸하고 적당히 은폐·축소하면 세상이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권력은 박처장의 주도 아래 화장(火葬)을 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음험한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졌다. 사건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가 화장을 거부하고 부검을 고집했다. 부검 결과는 경찰의 말처럼 단순 쇼크사가 아니라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는 박종철 군이 ‘물고문을 받던 중 질식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박처장은 조반장 등 형사 두 사람을 구속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권력의 뜻대로만 되지 않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조반장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듣고 수배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나선 교도관 한병용, 그의 부탁을 받은 평범한 대학생 조카 연희 등등.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있는 선택을 했고 이는 마침내 우리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6월을 완성하게 했다.

영화 ‘1987’은 한 대학생이 불의한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 1987년 1월부터 온 나라의 광장을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메운 6월까지의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 서슬퍼런 총칼을 앞세운 독재권력 앞에 숨죽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큰 용기를 냈고,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승리를 쟁취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시간의 감동을 2018년으로 끌어낸다.

‘1987’이 주는 감동은 그래서 스크린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영화를 관람한 700만 관람객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감동을 오늘의 삶 속에 투영한다. 불과 3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박제된 기록으로만 가둬놓지 않고 생생한 오늘의 가치로 되살려낸다. 특히 50~60세대들에게는 20~30 청춘의시절이었던 1980년대를 전후한 자신의 삶을 추억하게 하고 1987년 6월 당시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한다.

80년대 스무살 시절, 함께 짱돌을 던지고 최루탄에 매운 눈물을 흘렸던 친구가 최근 평생의 동지를 먼저 떠나보냈다. 광주의 먼 내일을 바라보며 아직도 젖어있는 그의 깊은 눈이 내게 물었다. “친구, 광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과연 30여년 전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검사나 윤기자, 혹은 한병용이나 연희와 비슷했을까? 아니면 권력의 중심에 있던 박처장과 닮았을까?”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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