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브라암스를 좋아하시나요?

입력 2018.01.29. 16:38 수정 2018.01.29. 16:43 댓글 0개
김현옥의 음악이 있는 아침 작곡가/달빛오디세이 대표

19세기 기술의 확산은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면서,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팽창으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전통적인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소위 낭만주의(1820-1900)라고 일컫는 이 시기에는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면서 음악학교가 생기고 음악가의 배출도 많아졌다. 작곡가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이상 교회나 귀족들의 후원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립하게 되었고, 궁정이나 교회에서 하던 연주장소가 전문 연주홀로 옮겨졌으며, 양식적인 면에서는 이전보다 자신의 독자성을 크게 개발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인간의 감정이나 자연계의 현상과 타 예술, 즉 문학이나 회화적인 내용을 음악과 배합하여 예술적 표현을 확장시켜 나갔으며, 악기제작으로 인해 확대된 관현악은 이를 다채롭게 표현하는 최대의 수단이 되었다.

작곡가들 자신의 주관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물론이요, 자본을 쥐게 되면서 부르조아가 된 일반 시민들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요구하게 되었다. 종교나 왕권, 귀족이 누려왔던 특권이 시장성을 띠면서 대중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것이다. 21세기를 지나고 있는 현재는 오히려 시민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역사는 참 아이러닉하다.

브라암스는 흔히 고전주의의 계승자라고 부른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브라암스의 1번 교향곡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했던 말은 매우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구조나 기법면을 볼 때, 보수적인 경향을 지니면서 고전파의 이상을 마무리 한, 전통주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곡가가 미래의 음악가그룹이었던 신독일악파를 따를 때, 그는 단 한 곡의 표제음악도(문학이나 회화 등 표제를 가지고 추상적인 내용이나 대상을 묘사하려는 음악) 작곡하지 않으면서, 절대음악(순수한 음의 논리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음악)을 고수하여 빈고전주의 정신과 양식을 계승시켰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던 브라암스는 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고독한 예술가로 생을 보냈다. 브라암스를 표현하는 데 로맹 골드롱의 말은 때로 적절하게 쓰인다. ‘브라암스 음악은 막연한 우수, 애매한 욕망, 항상 떠 있으며, 항상 변화를 하는 마음의 움직임, 규정하기 어려운 마음 속의 명쾌한 언어, 명석한 대위법’이라고. 그렇다. 그의 음악은 애수어린 분위기에 늘 쓸쓸한 선율이 입혀지고, 꽉 찬 화음의 덩어리들은 여백미 없이 공간을 압도한다. 나뭇잎 하나 없는 겨울나무처럼 군더더기 없는 맨 몸이니, 내면의 무겁고 깊은 감성은 어딘가로 정처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다.

브라암스의 교향곡 4번. 시대를 초월하여 지킨, 보수의 긍정성이 느껴지는 역작 중의 역작이다. 단 두 음으로 시작되는 1악장의 단조 주제는 북부 독일의 기후를 연상하듯 암담하고 우울하다. 깊은 삶의 무거움이 가벼움과 시소를 타듯 유희하는 모습이 처절하리만큼 아름답다. 어찌 이토록 절제되고 정화된 감정이 있을까.

프랑소아즈 사강의 소설을 영화화한 ‘브라암스를 좋아하세요’의 덕분일까. 어느 작곡가보다 ‘좋아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브라암스. 천상병시인도 브라암스를 좋아하여 아침마다 이 곡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한다. 목표에 도달해야만 행복인가. 삶은 여행이 아니던가. 겨울의 무거움은 무거움으로 풀자.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꾸뻬는 말한다. 행복이란 행복을 추구할 때 얻어지는 부수적인 효과라고.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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