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이목지신(移木之信)과 식언(食言)

입력 2018.01.22. 14:54 수정 2018.01.22. 15:44 댓글 0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나무를 옮기는 믿음’이다. 위정자가 나무를 옮긴 사람에게 상을 줘 백성들의 믿음을 얻은데서 유래했다.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다. 사목지신(徙木之信)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에 ‘상앙(본명 공손앙)’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법치주의를 표방, 진나라 부국강병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진의 군주 효공(孝公)의 신임이 두터웠다. 효공이 변법(變法)을 단행하기 위해 법령을 제정했다. 그런데 상앙은 법 시행에 뜸을 들였다. 효공이 까닭을 물었다. 상앙은 “법을 세상에 공표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백성들이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백성들이 법을 잘 따르게 하는 방법을 고심하던 상앙은 아이디어를 냈다. 높이가 세 발되는 나무를 남문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상금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했다. 반응이 시큰둥했다. 상금을 오십금(五十金)으로 올렸다. 힘깨나 쓰는 백성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 약속대로 상금을 주고 법령을 시행했다.

그럼에도 법 시행 초기에 백성들은 불만이 많았다. 부당성을 지적하는 이도 상당했다. 상앙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마침 그 때 태자가 법을 어겼다. 상앙은 태자의 후견인 격인 태부(太傅)를 참형에 처했다. 또 태사(太師)에게는 자자형(刺字刑·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홈을 내 먹물로 글자를 새기는 형벌)의 벌을 내렸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법을 잘 지켰으며 10년이 지나자 모두가 법을 신뢰하기에 이르렀다. 길에 남의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고 도둑도 사라졌다. 살림살이도 넉넉해졌다. 자연스레 나라 전체가 강해졌다.

‘이목지신’은 7~8년 전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에 맞선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주고받은 고사성어 공방에 인용되기도 했다. 정 대표가 박 전대표를 겨냥해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 공격하자 박사모가 ‘이목지신’이라고 받아친 것이다. ‘미생지신’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지만, 여하간 ‘지신(之信)’의 대결이라 할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목지신’의 반대편에는 ‘미생지신’이 아니라 식언(食言)이 놓여있는 듯 싶다. ‘식언’은 ‘말을 먹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입밖에 꺼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의미다.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경우를 가리킨다. 정치권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특히 선거판에서는 ‘이목지신’을 실천하는 사람 보다 이익을 노려 ‘식언’을 일삼는 사람이 허다하다. 가히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 얼어죽은 시대다. 광주가 걱정이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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