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다방구와 뽕뽕다리

입력 2024.02.07. 10:20 수정 2024.02.07. 20:59 댓글 0개
김만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 에디터

거충 어림잡아 헤아려도 햇수로 열 손가락은 훌쩍 뛰어넘었다. 대나무 특산품인 석작을 만드는 담양 삼다리(三茶里)를 찾아가는 길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도 죽세공예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사용이 간편한 플라스틱이 등장하고 중국산 수입까지 곁들여진 탓이었다.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비게이션 덕택에 마을을 찾는 길은 수월했지만 풍경은 생경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탓인지, 기억이 조작된 탓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애먼 데를 찾은 것이 아니라는 건 마을을 둘러싼 대나무 밭을 보고 알았다. 우르르 된바람이 몰려올 때마다 댓잎들끼리 몸을 부비며 '싸르락 싸르락'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500년 이어진 전통 맥 끊길라

마을회관에 들어섰을 때, 20여 명의 남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에 열중하는가 하면 탁자에 모여 화투를 즐기는 사람, 소파에 몸을 기대 조는 사람도 있었다.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죽세공예가 호황기이고, 지금처럼 설을 앞두고 있는 시기였다면 모두 힘을 모아 씨줄 날줄로 대나무를 엮고 있을 테지만 지금은 '남의 일'이 돼버린 듯했다.

한때는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주민 중 대부분이 죽세공예에 참여하면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마을이기도 했다. 담양 죽물시장에 나온 석작의 80%가 '삼다리 석작'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주민들이 일손을 놓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라고 했다. 중국산 수입품과 플라스틱에 밀려 찾는 이가 없으니 만들 일도 없는 것이었다. 대나무밭 주인인 죽주(竹主)는 대통밥이나 대통술 등의 용도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다 죽세공예의 맥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이같은 상황은 복조리를 만드는 화순의 복조리마을이나 왕골돗자리를 만드는 함평의 외세마을 역시 다르지 않다. 500여 년 이어져 온 죽세공예와 복조리, 왕골돗자리를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꿩 대신 닭'도 좋은 민족 대명절

일을 마치고 삼다리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건너려는데 문득 '다방구'와 '뽕뽕다리'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유년기, 우리의 아지트는 광주천 '뚝방'과 천변 공터였다. 뚝방을 따라 길게 늘어선 버드나무 중 비교적 몸피가 큰 나무를 우리는 '다방구 나무'라고 불렀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다방구나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할 때 기둥으로 활용한 나무였다. 천변 공터는 바닥이 평평해 금(줄)을 새겨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징어게임이나 땅따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등을 번갈아가며 할 수 있었다. 한겨울 길눈이라도 내릴라치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두툼한 비닐을 들고 광주천 뚝방으로 모였다. 부모님 몰래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대야를 든 '통 큰'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는 둑에서 천변까지 이어진 경사를 이용해 어설픈 눈썰매를 즐겼다.

설 명절은 놀거리가 다양해서 더욱 좋았다. 가오리연, 방패연이 하늘을 날고 팽이치기와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동그란 새 딱지, 장난감 총 등이 등장했다.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세뱃돈을 받은 친구들이 뽐내는 것들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가는 양동시장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광천동에서 양동시장까지 둑을 따라 가는 길이 결코 짧지 않았는데도 마냥 신났다. 광천동에서 양동시장을 가다 보면 '뽕뽕다리'를 지나쳤다. 동네 형들을 따라가 일부러 건너보기도 했는데 뽕뽕 구멍 뚫린 철판 아래로 광주천이 하얗게 부서지며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양동시장은 먹거리의 천국이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과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찐빵은 물론 산더미처럼 쌓인 과자들을 보면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무엇이든 쥐어주길 기대했지만 어림없었다. 찰싹, 매몰찬 등싸대기만 불렀을 뿐이었다. 엄마가 코다리를 무척 많이 샀다는 것을 안 것은 객지에서 일하고 있는 형이 설을 쇠러 온 이후였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는 말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우리의 식성을 자극했다. 떡국에는 원래 꿩을 넣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소고기나 닭으로 대신하곤 했다. '꿩 대신 닭'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맛은 쫄깃하고 달기만 했다.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설은 음력으로 새해 첫날 오순도순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 훈훈한 미풍양속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음력 설을 '구정'이라고 폄하하고 우리의 전통을 훼손하려고 했음에도 꿋꿋이 맥을 이어온 소중한 유산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설 명절의 의미가 위축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아예 고향 방문 시기를 당기거나 포기하고 개인 휴가를 즐기거나 여행을 가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전통 놀이문화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윷놀이나 연날리기, 비석치기 대신 가상의 세계 안에서 누군가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거나 게임을 한다. 도심에서 펼쳐지는 굵직한 문화행사도, 자신이 사는 마을의 크고 작은 설맞이 프로그램에도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문명 속에서 우리는 많은 걸 누리고 있지만 어쩌면 더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유산은 남이 갖거나 흉내 내지 못하는 정체성을 만든다. 그 정체성은 본인마저 의식하지 못하는 사투리나 억양에서 발현될 수 있고,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습득돼 내재된 것이 기시감처럼 드러날 수도 있다.

손등 부르튼 채 콧물 질질 흘리며 오징어게임, 비석치기를 하며 누비고 다녔던 광주천 둑과 천변, 뽕뽕다리가 갈수록 눈에 선명한 이유는 단순히 유년의 추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나'가 아닌 '우리'와의 부대낌 속에서 배어난 '-살이'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고 내일을 밝히는 불빛이기에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삼다리의 죽세공예나 동네에서 즐겼던 놀이문화가 더욱 소중한 이유다.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맥없이 휴대전화의 세계에 빠져 있을 것인가, 명절 설거지 벌칙 걸고 온 가족 윷놀이 한판 벌여볼 것인가.

김만선 취재3본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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