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12월의 풍경 속에 떠오르는 말들

입력 2023.12.04. 14:54 수정 2023.12.05. 09:00 댓글 0개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시인/대구문학관장

#산책

연말의 허전과 추위를 산책으로 대응한다. 늘 하는 일이니 빼먹을 수 없다. 신천 상류. 가창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이 파동 계곡을 흐른다. 서편 산 아래는 신천 고속화도로. 동편 파동은 한창 아파트 신축들이 이루어지느라 부산하다. 강은 그래도 수량이 제법이고, 양안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데다, 비교적 한적하다. 추위에도 거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의 하류 쪽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다. 걸어서 오기도 하고, 자전거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파동과 가창의 주민들이다.

마지막 달의 초입인데도 아직 강안은 붉고 노란 단풍이 남아 있다. 그래서 올해는 단풍이 이상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제 때 오지도 않은데다, 제 때 '가지도' 않는다. 도시의 거리에는 은행나무가 아직도 밝은 노란 색을 포도에 떨어뜨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헝클어진 기분이다.

날씨 탓이다. 올해의 날씨는 예년에 비해 더 더웠다. 여름이 길어졌다. 그 바람에 나무들이 뒤늦게 가을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가을이 더욱 짧아져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잎들이 제대로 물들지 못해 칙칙해져버렸다. '서늘한 가을'이 제 때 와야 나무들이 잎을 물들이는 보조색소를 생성, 단풍 색을 이룬다. 온난화로 여름이 길어져서 그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무들만 그런 게 아니다. 강에는 지난달부터 부쩍 새들의 모임이 잦았다. 갈대숲 주변에 수십 마리의 쇠백로들이 모이기도 했다. 이제 이동할 때가 됐음을 감지하고 대장정의 군무를 구상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을 끝을 기점으로 날아올라 월동지로 떠난다. 산책길에 그들의 비행이 길게 줄을 이은 것이 자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남은 철새들이 꽤 보인다. 이곳 겨울을 견디어본 새들이다. 온난화로 견딜만하다고 여긴 것일 게다. 그들은 북쪽에서 날아온 많은 철새들과 함께 신천에서 겨울을 난다. 이를 두고 철새들의 텃새화가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의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게 이로써 실감이 간다. 한 통계가 그걸 보여준다. 최근 30년(1991~2020년)은 과거 30년(1912~1940년)에 비해 여름이 20일 가량 늘고, 가을은 4일 줄었다고 한다.

#해월

며칠 전 포항에 갔다. 해월 최시형의 일대기를 단시조로 그려서 모자이크 식으로 얽어 짠 나의 서사시집 '해월, 길노래'의 북 토크를 하고 싶다고 해서다.

북 토크에는 포항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모여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술로 소통하는 삶을 저마다 곡진하게 드러내주어 감동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해월의 자연 사랑의 시선을 강조했고, 그들도 그 점에 큰 공감을 드러냈다. 80년대 들어 우리 문화계의 화두로 등장한 생명운동과 여성운동, 환경운동이 상당 부분 그의 사상에서 뿌리를 찾는다. 김지하와 장일순의 생명운동 역시 그 연원이 해월이었다. 해월이 강조한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같이 하라"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다"는 말들은 생태주의적 관점과 생명사상의 요체이다. 이를 복원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게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할 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황금 고리

기후 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인 환경의 변화가 자주 언급된다. 사라지는 만년설, 전 세계적인 강설량 감소가 불러온 홍수와 가뭄의 재앙, 이로 인한 사막화, 생물종의 감소 등.

1962년에 나온, 미국의 해양학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들먹일 것 없이 이러한 기후 변화의 주요 요인은 인간의 자연 파괴이다. 봄이 왔는데도 생태계 파괴로 인해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바로 '침묵의 봄'이다. 시인 정현종의 '들판이 적막하다'도 그 점을 환기시킨다.

"가을 햇볕에 공기에/ 익는 벼에/ 눈부신 것 천지인데,/ 그런데,/ 아, 들판이 적막하다 ―/ 메뚜기가 없다!//오 이 불길한 고요―/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졌느니…."

농약으로 인해 들에 메뚜기가 사라진 건 생명들의 황금 고리, 곧 그 성스러운 순환체계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는 자연생태계를 위협한다. 동·식물의 서식환경에 변화를 가져오며, 이로 인한 그들의 서식지에 크고 작은 변화를 초래한다. 기후변화 학술자료인 '기후변화로 인한 도시 야생조류의 종 풍부도 변화'도 이를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도시 야생조류의 잠재서식지가 줄어들어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종의 수를 나타내는 '종 풍부도'가 0인 지역이 계속 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조류의 서식지 이동이 변화할 것이다. 제48차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총회에서 전 세계 195개국 합의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평균기온이 1.5℃ 상승할 경우, 곤충의 6%, 식물의 8%, 척추동물의 4%가 서식처의 절반 이상을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

신천 상류는 대도시로 유입되는 자연의 중요한 통로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거기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변화는 물론 서식지 환경의 변화를 꼼꼼히 챙길 때다. 올해처럼 계절의 교란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길한 조짐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과학과 산업기술은 물론 우리 삶의 태도와 사회적인 소통이 점점 더 자연과의 공존을 정립하는 데로 모아져야 한다. 무너져가는 '황금 고리'의 복원이 시급하다.

해월의 생명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 하나 있기 위해 태양과 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이 지구 아니 우주 전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대와 나는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가"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의 존재가 있다"라고 강조한 '한살림'의 창시자 장일순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시인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