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유머에 자신 없다면 차라리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자

입력 2023.12.01. 12:13 수정 2023.12.03. 19:11 댓글 0개
공진성 아침시평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는 유머 감각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농담도 잘 하지 않는다. 머리 회전이 느려서 그런지 남의 농담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웃거나 옆 사람의 설명을 듣고서야 뭐가 웃음의 포인트인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나를 두고 어렸을 때 어머니는 '형광등'이라고 하셨다. 그런 내가 바로 알아듣고 웃을 수 있는 농담이라면 그것은 일차원적 농담이거나 널리 알려진 농담일 가능성이 크다.

유머 감각이 없는 내가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노력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일단 나 자신을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대머리로서 겪는 각종 애로사항이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대개 재미있어들 한다. 남이 먼저 나의 모발 상태를 가지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면 나도 불쾌할 것이고 듣는 다른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내가 먼저 나를 소재로 농담하면 나도 불쾌하지 않고 남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자기를 놀림감으로 삼는 '자학' 개그는 웃음을 유발하는 오래된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청중의 웃음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다고 착각하며 대머리 이야기를 할 때, 청중 가운데 대머리임을 감추고 싶어서 가발을 쓴 사람이 있다면, 나의 자기희생은 부지불식간에 타인을 대상화하는 조롱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여러 차례 사석에서 나와 같은 '떳떳한 대머리'와 가발을 쓰거나 모발을 이식한 '비겁한 대머리'를 구분하며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다. 내 딴에는 '대머리 프라이드'를 운운하며 미시정치적 의미를 강조했지만, 각 사람의 다른 처지를 생각하면 함부로 할 말은 아니었다.

유머 감각은 잘 활용하면 한데 모인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청중을 웃는 사람과 못/안 웃는 사람으로 나뉘게 만든다. 얼마 전에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 이제는 정년퇴직하신 언변 좋기로 유명한 선배 교수 한 분이 학창 시절 추억을 얘기하다가 성적인 농담을 했다.

순간 청중은 재미있다고 웃는 다수의 남성과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나머지로 나뉘었다. 청중의 일부가 지닌 속성을 소재로 삼는 농담은 그래서 위험하다.

농담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핵심은 권력관계에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강자를 놀리는 것은 풍자와 해학이 될 수 있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대한 도전일 수 있지만, 약자를 놀리는 것은 결코 그런 일이 아니다. 최근 벌어진 '암컷'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그 발언을 한 사람과 그 자리에서 함께 재미있다고 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용산의 그 누구와 자신들의 권력관계가 핵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자유주의 사회의 시민이 누려야 마땅한 권리일 뿐만 아니라 '암울한 시기'를 지나는 데 필요한 명랑한 해학 정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암컷' 발언을 듣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 시민들은 여전한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동물 취급받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동물농장'에도 보면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는 말에는 수컷이 '설치는'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암컷이 '설치는' 것만 문제 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편견이 깔려 있다. 지난 9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중에 검찰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수사 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면서 "그러면 앞으로 잡범들도 다 이렇게 하지 않겠나"라고 한 말도 부지불식간에 그가 이재명 대표를 잡범만도 못한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때 머리 회전이 빨랐다고 해서 자신의 비유 사용 능력과 유머 감각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웃기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비유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잘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에 언제부턴가 상대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난무하고 어설픈 비유와 깐죽임이 넘쳐 나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의 폐부를 찌르는 정확한 유머이고, 청중의 일부를 불쾌하게 만들면서 배제하는 유머가 아니라 청중을 하나로 묶는 통쾌한 유머이다. 국민을 통합하는 큰 이념이 필요하듯이 큰 유머도 필요하다. 자신 없다면 차라리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자.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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