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사람의 무엇을 볼 것인가.

입력 2023.11.26. 14:16 수정 2023.11.26. 19:01 댓글 0개
정지아 아침시평 소설가

두어 달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제자가 구례 오일장을 구경하겠다며 나가더니 검정 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왔다. 뭐냐고 물었더니 저도 모른단다.

"알지도 못하는 걸 뭐하러 샀어?"

"목이 다 늘어난 티를 입은 할머니가 팔고 있길래..."

그 맘 안다. 안쓰러운 마음에 뭔지도 모르고 냉큼 샀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야, 그 할매들 너보다 부자야."

설마 하는 눈치다. 제자는 차도 있고 입성도 세련됐다. 그러나 집은 없다. 십 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나 강남 아파트 전세 들어갈 돈도 모으지 못했다. 부모의 지원 없이는 서울 사는 사람들 대부분 그런 수준이다. 그런데도 차는 있어야 하고, 번듯한 옷이며 가방, 신발도 구비해야 한다. 서울 생활은 그렇다. 대부분 걸치는 옷, 타고 다니는 차, 사는 동네, 학력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니까. 괜찮은 사람, 그럭저럭 사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가랑이가 찢어져도 행색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넌 집도 없지? 그 할매는 집도 있고 땅도 있어."

시골 사람들은 차림새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목 늘어난 티에 몸빼바지를 입고 다녀도 그 사람이 하는 식당에 손님이 미어터지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누구네 땅이 몇 백 평인지, 몇 만 평인지도 다 안다. 가난한 집안 자식이 입성 번드르르하게 입고 다녔다가는 집안 형편도 모르고 사치나 하는 철없는 애로 입방아에 오른다. 부자가 허름하게 하고 다녀도 저렇게 인색해서 부자가 된 모양이라고 뒷말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행색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차림새로만은 구별하기 어렵다. 구례 바닥에서 옷차림만 보고 집안 형편을 추론했다가는 내 제자처럼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덜컥 물건을 사 온 내 제자보다 허름한 옷 입고 나물 파는 할머니가 실제로 훨씬 더 부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제자가 가져온 봉지들을 풀어헤쳤다. 냉이, 고춧잎, 고구마순, 셋 다 다듬지도 않은데다 너무 쇠어서 먹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물론 겉잎을 일일이 떼어내면 먹을 수야 있을 테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먹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서 집에서 살림 사는 이웃에게 줬다. 손끝 야무진 이웃은 물건을 풀자마자 혀를 찼다.

"묵도 못헐 것을 머흐러 샀대?"

살림 백단 이웃은 나물을 절대 사지 않는다. 오염된 도로 주변이나 개똥 천지인 동네 인근에서 채취했을 거라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분들이 많다. 물건만 보고 어디서 채취했는지 알 수 없을 테니까. 허리며 다리며 성한 데 없는 노인들이 쉽고 편한 데서 채취하고 싶은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먹지 못할 정도로 너무 쇤 것도 채취한다는 거다. 여린 쑥만 골라 캐면 시간도 훨씬 더 걸리거니와 아무리 캐도 양이 늘지 않는다. 먹을 수 있든 없든 큰 놈을 쑥쑥 캐야 바구니가 금세 수북해진다. 사간 뒤에 욕을 하든 말든 대개는 뜨내기손님이니 신경 쓸 것도 없다(그런 물건을 사는 손님은 십중팔구 나물 잘 모르는 도시 사람이다). 시장에는 이런 얌체 할머니들도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요즘 장에 가면 사람을 보지 않는다. 물건을 본다(초보 촌년이었을 때는 자꾸 허름한 할매에게 끌렸고, 말빨 좋고 호객 잘하는 할매에게 끌렸다). 지지난 장에 철지난 고구마순을 발견했다. 내가 호박잎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고구마순이다. 너무 가늘어서 살까말까 망설이는 참인데 파는 할매가 말을 건넸다.

"연하디 연한 놈으로만 따다봉게 볼품이 없지라이? 끝물이라 그요. 나가 엊저녁에 해묵어봤는디 한참 때만은 못혀도 묵을 만은 헙디다."

직접 해먹어봤다는 할매 말을 믿고 샀다.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얇아서 그렇지 아마도 마지막일 고구마순은 한참 때보다 더 야들야들했다. 행색보다는, 번드르르한 말보다는, 할매가 파는 물건이 할매라는 사람을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의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엇이 그라는 사람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일까? 적어도 행색은 아닐 것이다. 정지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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