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왕후장상의 씨

입력 2018.01.14. 13:40 수정 2018.01.15. 08:37 댓글 0개

왕(王)은 왕조시대에 한 나라의 지배자를 일컫는다. 후(侯)는 왕보다 한 등급 낮은 봉건체제에서 한 지역의 유력자들이다. 동양권의 제후(제후)라는 칭호는 중세 유럽의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등 영주(領主)와 유사하다. 그런가 하면 장상(將相)은 장군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나 재상가의 고위직들을 뭉뚱거려 지칭한다.

고래로 왕후장상의 유전자(씨)가 따로 있었던 게 일반적이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 한번 왕족은 대를 이어 그 피를 물려받기 일쑤였으며, 장상의 유전자도 마찬가지 였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왕후장상의 반열에 들기는 극히 희박하다.

왕조 말, 민란의 시기에 검수(黔首·일반 백성)의 몸으로 부패와 무능에 찌들었던 구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서 새로운 권력층의 시조가 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조 명종 때(1776년)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의 난(亂)이 한 사례다. 충청도 지역 공주 명학소에서 신분제 타파를 주장하며 일어선 그들의 민란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뒤이어 노비였던 만적의 난(1198년)에서도 왕후장상의 씨를 바꾸려는 안간힘이 있었다.

만적은 그와 같은 노비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 때가 이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노비 출신 이의민도 장상의 권력을 잡았지 않았는가.”고 외쳤다. 그의 난이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포부만큼은 헌걸찼음에 틀림없다.

그 자신이 황제가 되고 자손들에게 황족의 삶을 누리게 한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경우는 특이하다. 그에게는 분명 알 수 없는 하늘의 운에다 그에 더해진 능력이 있었다. ‘운거영웅불재모(運去英雄不在謨·때가 이르지 못하면 영웅의 계략도 쓸모없지만), 시래천하개동력(時來天下皆同力·때가 오면 천하가 나서서 돕는다)’라 했던가. 아뭏든 유방은 왕후장상의 어떤 유전자도 없이 평민에서 황제, 그것도 한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떨까. 왕후장상은 아니더라도 고관대작, 혹은 가진 자와 하류계급의 못 가진 자라는 구분이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이 땅의 갑남을녀들은 지난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무너뜨린 그들의 요구에는 저간의 여러 적폐 청산 외에 양극화의 벽을 허물어 보편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라는 명령도 담겨있을 터다.

어느 사회 비평가는 얼마전 한 언론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개천 용(龍)’ 타령을 하며 대다수의 존엄을 일상적으로 짓밟는 체제였다. ‘개천 용’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사회는 극소수 ‘용’에게 특권을 몰아주는 사회다. 또한 노력의 동기가 탁월성의 추구에 있는게 아니라 멸시의 공포에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인간은 대체로 함께 참담해질 수 밖에 없다.”

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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