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손으로 쓴 역사 아닌 땅에 찍힌 역사 찾아라”

입력 2018.01.11. 17:33 수정 2018.01.11. 17:45 댓글 0개
민주화 운동 최선봉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민중 이끄는 세계 예언자 주목…28년 만에 복간

지난6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영화 1987 무료 관람 행사

“문익환이 시인으로 불리게 된 삶의 후반부는 실천가로서의 삶의 여정과 일치한다. 그 생명의 바다에 이른 발걸음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발바닥이 땅에 남긴 것을 보충하는 일종의 주석으로서 문익환은 ‘히브리 민중사’라는 지적을 남긴다, 본래 구약성서 신학자이자 성서 번역가였던 문익환이 삶의 반전을 통해 체득한 통찰로 성서를 재해석을 내놓은 빛나는 저작 ‘히브리 민중사’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역사에 가려진 민중의 역사는 본래의 역동적인 모습을 되찾는다.”(288-299쪽, 복간을 맞이하여)

2018년 초 영화 ‘1987’의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영화는 전태일부터 이한열까지 열사들의 이름을 외쳐 부르는 고(故) 문익환 목사의 모습을 보이며 엔딩 크레딧을 맞는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문익환 목사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때마침 통일운동가로 기억되는 문익환 목사가 사상가로서 출발한 계기가 됐던 ‘히브리민중사’가 28년 만에 복간됐다.

이 책을 펼치면 구약이 시작되는 ‘창세기’가 아니라 ‘출애굽기’부터 시작되는 것이 매우 이채롭다.

야훼를 이집트라는 제국에서 고통받던 히브리 민중이 의지하는 민중의 신으로 다시 불러보는 민중신학의 대표자다운 시각이다,

문 목사가 생전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총 여섯 차례의 수감생활 중 세번째 옥고를 치른 후 발전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민족주의자이자 통일운동가인 문 목사는 히브리 민중과 한국 민중의 연결성을 ‘발바닥 역사’로 규정했다.

“손으로 만들고 손으로 쓰는 역사가 아니라 땅바닥에 찍힌 발바닥의 역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바닥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온 세상이 딱 멎어 버리는 밑바닥 계층, 발바닥처럼 그 얼굴인 이들은 누구일까요?”(21-23쪽, 히브리 민중사 서설)

책에서 문 목사는 고통 받는 히브리 민중을 이끄는 예언자들에 주목한다.

저항운동을 이끈 엘리아, 재야의 목소리를 터트린 이모스, 사랑을 토하는 호세아, 시온의 비극을 목도한 이사야, 들판에서 일어난 농민 예언자 미가, 마지막으로 시대의 풍운아이자 세계만방의 예언자 된 예레미아를 차례차례 읽으면 이 예언자들의 모습과 문익환 목사의 모습에서 겹치는 면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예레미아를 살펴보는 부분에서 중단된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민중해방과 민족의 화해라는 과제를 맡기고 떠난 문익환 목사의 대표작 ‘히브리 민중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해동 목사는 후기글 ‘내가 본 문익환- 민주회복과 민족통일운동의 선구자’에서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있던 모든 비극의 원인은 분단에 있음을 그는 간파했다”며 “문익환 목사님의 족적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익환 목사는 생전 민중을 아프게 사랑한 신학자로 불렸다.

그는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권사의 아들로 태어나 1946년 8월 신의주와 개성을 거쳐 서울에 도착, 이듬해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49년 프린스턴신학대에 유학했고 1968년부터 8년 동안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책임위원을 맡았고 한빛교회 목사를 거쳐 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된 이래 89년 3월 역사적 평양 방문으로 구속되기까지 옥고를 치른 후 94년 꿈에도 그리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영면했다.

자서로 ‘새삼스론 하루’ 등 시집과 수필집 ‘새 것, 아름다운 것’ 옥중서한집 ‘꿈이 오는 새벽녘’ 등이 있다. 최민석기자 backdoor20@nate.com

히브리 민중사/문익환 지음/ 정한책방/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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