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카페, 서로 말을 섞고 교감하는 공간으로

입력 2023.11.06. 13:23 수정 2023.11.06. 19:02 댓글 0개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시인/대구문학관장

#1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후배가 퇴근 후 줄곧 학교 가까운 카페에 틀어박혀 소설을 쓴다고 해서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2000년 이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카페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공부를 하거나 작품을 쓰는 이들을 자주 보게 됐다. 아예 스터디카페가 생길 정도다. 나 역시 오전에는 대개 동네 면소재지에 있는 카페에 간다. 이 카페는 오전 9시면 문을 연다. 손님들은 점심을 먹고 나타나기에 오전에는 조용하다. 그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다. 오래 들락거려서 구석마다 앉아 공부하는 젊은이들과 낯을 익히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다.

대도시 부근의 시골 지역이지만, 카페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그 규모도 커진다. 면 소재지를 벗어나 시골 쪽으로 나가면 도시인들이 생수를 받아가는 곳이 있는데, 그 근방에 아주 조용한 카페가 있어서 거기도 가끔 들린다. 그런데 그 조용하던 카페에 변화가 생겼다.

문득 밖이 들떠 있는 듯해서 창으로 내다보니 젊은이들이 바깥의 야외용 탁자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평소 한정된 손님뿐이라 조용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바뀐 것이다. 평소 안 보이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그래, 밖에 기막힌 가을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카페 밖에 몇 그루 서 있는 걸 계절감으로 즐기는 것이다. 주인은 "우리 은행나무를 어찌 알았는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바깥의 탁자들을 채워버렸다. 덕분에 무척 바빠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까르르대며 사진을 찍어댄다. "젊은이들은 카페만 찾는다"고, 자주 만나 차를 나누는 나이든 화가 친구는 탄식하듯이 말하기도 한다. 휴일 아침 우리 동네 대로에는 도시를 빠져나가는 승용차들로 꽉 차서 밀리는데, 알고 보니, 그들 대부분이 가까운 청도나 밀양 등지의 대형 카페로 몰려든다고 한다. 가을 경치를 카페의 창을 통해 만끽하는 게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다.

#2

카페문화는 "각종 차와 음료, 주류, 간단한 서양식 음식을 즐기는 것과 관련된 문화"라고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카페란 커피의 세계다.

커피는 원산지가 아프리카다. 17세기에 유럽에 소개된 후 카페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65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처음 문을 연 카페는 차츰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하여 남녀노소,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들러서 차를 마시며 대화와 토론을 벌이는 장소가 됐다. 오죽하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점이 카페로 꼽혔을까? 카페는 사회적 공론 장으로 여론을 선도하는 곳이 됐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카페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시작됐다"라면서, 의회와 정당의 기원으로 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카페가 많이 나타난 건 1999년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의 국내진출이 기폭제가 된 걸로 본다. 소비주의의 한국형 과소비 현상에 편승한데다, 커피는 밖에서 마시는 음로라는 인식으로 바뀌면서 카페가 급증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지금 카페는 한국 사회를 뒤덮은 상태다. 커피 애호 수준이 세계에서 손꼽힌다. 카페는 진화를 거듭해 요즘은 베이커리 카페와 이름도 생소한 디저트 오마카세 등도 생겨난다. 2020년 현재 한국의 스타벅스는 1500호점을 돌파했을 정도다. 이용객도 다양하다. 카페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카공족들, 카페를 업무공간으로 사용하는 코피스족도 생겼다. 유명 카페를 순례하며 인증샷을 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우리의 카페는 '다기능 다목적의 융복합 허브'라고 특징 짓기도 한다. 사랑방 역할로 회의실을 갖추거나, 전시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상은 대개 순기능만을 꼽는 것인데, 기실 우리의 카페가 과연 고독한 현대인의 요구가 반영된 교감의 공간이며 공존의 장인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3

한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젊은이들의 전세취향이 바뀌고 있단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겠지만, 좁으면서도 욕실이 없는 집을 선호한다는 것. 목욕은 동네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다. '센토'라는 일본의 동네목욕탕은 여전히 인기다. 유명한 일본 영화인 니카노 료타 감독의 '행복 목욕탕'은 일본인들의 동네 목욕탕 문화를 잘 보여준다. 어쨌든 일본 청년들의 동네 목욕탕 이용 급증은 코로나로 격리와 소통 부재의 뼈아픈 고통을 겪은 후에 나타난 이웃과의 소통과 공감의 문화를 갈망하는 욕망의 분출로 보기도 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우리 청년들의 카페 열풍을 그런 공감과 소통의 열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을까? 실망스럽게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 공간에서 각자 따로 호흡하기'의 이중성이 두드러진다. 거대 커피 체인점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누가 "디카페인에 설탕은 3분의 1만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하면, 종업원은 뭔 소리냐는 듯, 커피는 계량화되어있고, 설탕은 따로 비치되어 있으니, 알아서 타 먹으라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대부분의 커피가 정해진 메뉴로 주문받으며, 기계적으로 제조되는 것이다.

외국에 가면 흔히 보이는, 체인점이 아닌 로컬 카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단골 문화가 남아 있다. 주문 때 직원이랑 몇 마디 말도 나누고, 때로 손님의 취향을 감안해서 차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런 곳들도 점차 일률적인 주문과 응대로 바뀐다. 거기다 무인 판매점까지 급증하는 추세여서 점점 더 사람들끼리 말을 섞기가 불가능해지고, 인간미가 없어져 간다. 이런 상황에 카페 특유의 지역 커뮤니티 역할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우리의 카페 열풍과 분위기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카페 문화가 인간미의 교감과 연민의 교환, 그리고 상호 소통으로 나가길 은근히 열망한다. 카페가 원래 그러했듯, 그야말로 서로 정을 나누는 '삭막한 도시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말이다. 시인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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