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선 넘은´ 공깃밥 2천원?

입력 2023.10.25. 16:44 수정 2023.10.25. 19:01 댓글 0개
유지호의 무등칼럼 디지털편집부 겸 뉴스룸센터장

밥상에서 밥은 필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밥그릇은 지금의 국그릇만 했다. 큰 사기 그릇에 봉긋하게 쌓아올린 일명 고봉밥과 김치·고추·된장…. 농번기 때 손 거들러 전라남도 장흥에 있던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던 소반이었다. 군것질거리가 마땅치 않던 시절, 밥심으로 일하던 우리네 일상이었다. 고된 농삿일에 속칭 '머슴밥'이 필요했던 이유다. 밥 800g은 족히 먹었을 거다.

보성 벌교·조성 등을 무대로 한 소설 '태백산맥'엔 밥 한 술의 행복이 그려졌다. "으따와, 곡식 내얌새 맡은 지가 을매다냐. 회가 다 동허네웨." 한 대원이 낫을 들고 밭으로 들어서며 코를 벌름거렸다.. "이, 감나무 그늘 평상에 웃통 홀랑 벗고 보리 고봉밥 한 사발 묵고 매미소리 들음서 낮잠 한숨 푹 자면 신선이 따로 있드랑가?"

밥은 귀한 그릇에 담겼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놋그릇을 좋아했다고 한다. 놋그릇은 60년대 초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스텐 그릇)'에 밀려났다. 관리하기 쉽고 양은 그릇보다 덜 유해하다고 알려지면서다. 스텐 공깃밥은 쌀밥의 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부족했던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고봉밥은 사라졌다.

밥은 규격화 됐다. 서울시는 70년대 중반, 공기에만 밥을 담도록 의무화했다. 공기 크기는 내면 지름 10.5㎝, 높이 6㎝. 여기에 80% 정도 담도록 했다. 정부는 81년부터 이 규격을 전국으로 확대·적용했다. '공깃밥 보온 보관통'이 출시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쌀 생산량이 늘면서 행정명령은 흐지부지됐으나, 공깃밥은 식당밥의 전형이 됐다.

쌀 소비는 82년부터 뚝 떨어졌다. 공깃밥 등장 이후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 하루 평균 쌀 소비량도 155.5g에 그쳤다. 밥 한 공기(약 150g) 먹는 셈이다. 92년 소비량인 124.8㎏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밥 인심은 좋았다. 군복 입고 식당에 가면 공깃밥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지난 수 년간 이어졌던 '공깃밥=1천원' 국룰이 깨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 '공깃밥 2천원 인증'이 확산하면서다. 쌀값 등 최근 가파르게 상승한 식자재 물가 탓이다. 슬그머니 2배 뛴 가격에 서민들 한숨도 커졌다. "공깃밥 2천원? 선 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이젠 밥심도 지갑에서 나오는 시대가 됐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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