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갓 쓴 원숭이

입력 2018.01.10. 09:14 수정 2018.01.10. 14:47 댓글 0개

‘갓 쓴 원숭이’는 중국 초(楚)나라 항우(項羽)와 연관된 말이다. 옷차림 등 겉모습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속내나 됨됨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비웃는 반의어(反意語)다. 사람이 써야할 갓을 원숭이가 쓰고있으니 어울리지도 않고 우스꽝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원숭이가 이 말을 들으면 기분나쁠 일이긴 하다.

항우는 ‘산(山)을 뽑아낼만한 용력(역발산·力拔山)’과 ‘세상을 덮고도 남을 기개(기개세·氣蓋世)’로 중국 고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빼어난 용력과 절륜의 무용에 하루에 천리를 닫는다는 오추마까지 있었으니 당대 천하에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진시황(秦始皇)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아 ‘왕중 왕(王中 王)’, ‘서초패왕(西楚覇王)’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왕조를 열고 황제로 등극하지는 못했다.

그와 천하를 놓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였던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수십번의 싸움에서 번번히 이겼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어이없이 자멸하고 말았다.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 패하고 만 셈이다. 그의 본거지인 강동의 입구, 오강(烏江)에서 사랑했던 여인 우희(虞姬)를 죽이고 최후를 맞을 때(해하 전투)까지는 어김없는 천하 제일인자였다.

그런 항우를 빗댄 ‘갓 쓴 원숭이’의 유래는 이렇다. 원래 항우는 진(秦)왕조의 심장부, 함양을 무너뜨리고 유방을 비롯한 천하의 군벌들을 무릎꿇린 뒤 고향인 팽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함양은 지세로 보면 천험의 요새요,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가 짧은 기간이나마 세상을 다스린 중심지였다. 따라서 그곳에 머물며 계속해서 천하의 우이(牛耳)를 틀어쥐고 가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항우는 “입신출세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좋은 옷을 입고 밤 나들이를 하는 것과 같다”며 ‘금의환향(錦衣還鄕)’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초나라 간의대부 한생(韓生)이 ‘팽성으로 돌아감’은 ‘당금(當今) 천하의 대세를 감안하지 못함’이라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간언을 포기한 한생은 돌아서서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冠)을 씌운 꼴이군…”이라며 중얼거렸다.

원숭이는 아무리 관을 써도 사람이 못된다는 의미로 항우의 어리석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뒤늦게 그의 말 뜻을 알아챈 항우는 격분해서 한생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죽였다(팽살·烹殺). 말 그대로 ‘갓 쓴 원숭이’짓을 해버렸다.

그 옛날, 천하를 종횡한 항우조차도 갓 쓴 원숭이 짓을 했다. 필자를 포함한 적지않은 사람들 또한 그런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해에는 옷차림과 겉모습, 속내와 됨됨이가 일치되는 삶을 생각해 본다. ‘갓 쓴 원숭이’가 되지않겠다는 나름의 다짐이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갓 쓴 원숭이’같은 삶을 사는 이가 많은 듯 해서다.

김영태논설주간 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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