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우병우 구속으로 무죄추정원칙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18.01.09. 13:37 수정 2018.01.09. 13:41 댓글 0개
김종귀 법조칼럼 변호사(법률사무소 송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속됐다. 성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긴 하지만 박근혜정부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인물이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그도 감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구속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매번 빠져 나가 ‘법꾸라지’라는 별칭을 얻어낼 정도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크게 각인시킨 인물이다. 그런 우병우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확정되지도 않은 채로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나고 있으니 인생 무상함마저 느끼게 한다.

법원의 재판을 통해 죄가 있음이 확인된 다음에 감옥에 가는 것이야 법치국가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우병우는 수사기관이 밝힌 범죄혐의만 있을 뿐이다. 한때 “법조계에서는 우병우가 대통령이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던 그가 범죄가 있을 것이라는 혐의만으로 가고 싶은 데 못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를 법률용어로 미결구금이라 한다.

미결구금은 피고인의 재판절차참석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 두려워 재판절차에 출석하지 않고 도망다니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미결구금은 유죄확정판결의 집행을 확보하는 기능도 한다. 법원이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지만 도망다니는 바람에 엄숙한 판결문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유죄판결선고전에 안락한 자신의 집을 두고 비좁은 공간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부대끼며 생활해야 한다. 미결구금자는 교정공무원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최고규범인 헌법에 유죄판결확정 전에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하였음에도 그렇다.

무죄추정을 받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기에 미결구금은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상당 정도의 범죄혐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우병우는 지난해 촛불민심으로 정치적 단죄를 받았지만 미결구금을 해야 할지는 별도의 법적 판단을 해 검찰과 법원이 구속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검찰 및 법원의 판단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등 방어할 기회도 충분히 가졌을 것이다.

우병우가 구속 신세라 해서 마냥 즐거워 할 일인지는 한번쯤 고민해 볼 일이다. 우병우처럼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드러내 크게 출세한 사람도 저러는데 일반 서민은 어떨지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누구라도 살다보면 미결구금제도로 인해 유죄판결선고전임에도 감옥에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제대로 가져 보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힌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우병우는 촛불민심에서 보였듯이 정치적으로나 법적 관점에서 구속당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문제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의 어느 한 쪽에서라도 거부하면 안되는 게 인신구속이다. 적어도 이 문제 만큼은 법관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구속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예단을 가지고 구속판단과정에 참여한 검찰이나 법원을 원망하는 여론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미결구금제도는 우병우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5천만 전 국민에게 골고루 적용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근근히 벌어서 내집 마련하느라 진 빚 이자 꼬박꼬박 물어야 하고 자식 과외비용 감당해야 하는 삼촌, 이모, 고모도 유죄판결선고 전에 감옥에 가는 경우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수사기관인 경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는지, 영장발부과정에서 법원이 성심껏 살펴 보았는 지에 관심을 갖고 우병우사건을 보는 균형된 시각도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구속해야 한다고 좋아하다 보면 언제 내신세가 뒤바뀔지 모른다. 우리네 삼촌, 이모, 고모 또한 추운 겨울에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결정을 손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열명의 법꾸라지를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시민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무죄추정원칙은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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