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야 할 시간

입력 2018.01.07. 12:55 수정 2018.01.08. 08:28 댓글 0개
한희원 아침시평 한희원미술관 관장/화가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야 할 시간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시, 자화상 전문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존재들이다. 내면의 세계를 보다가 할퀴고 상처 받고 때로는 위로와 평안을 찾는다. 세상에 대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치열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가 자신에 대한 파동이 심한 때이다. 삶에 대한 회한과 실존에 대한 불안감으로 휘말릴 때 예술가들은 자신을 표현한다. 고통에 대한 싸움이 치열한 작가일수록 ‘자상(自像)’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남긴다.

윤두서는 낙향한 선비의 강건함을 형형한 눈빛과 압도할 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윤동주는 그의 여린 감성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자신의 내면을 가장 치열하게 내보이는 예술가는 단언컨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37세의 짧은 생애 중 십년간 화가 생활을 했던 고흐는 4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은 끝없이 방황하고 불안했던 그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작업이었다. 귀를 자른 후 붕대를 감고 자신을 그리고 있는 고흐의 자화상은 무서울 정도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분출하고 있다. 내면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혹독하게 싸우는 작가일수록 자신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남긴다.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릴 때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된다. 내가 나를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것은 실제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를 응시하는 동안 또 다른 나를 보게 되고 현재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지나왔던 생의 과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요즘인 것 같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로운 생의 시간을 맞이하는 요즘에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성찰과 회한 그리고 꿈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을 갖는다. 2018년 무술년 새해도 벌써 며칠이 지나고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갈 것이다. 시간은 몇 겁의 세월동안 아무런 형체도 없이 지나가고 있지만 인간은 시간에게 개념을 입히고 그 틀 속에 의미를 부여한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 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앞두고 우리 모두는 자신을 응시하며 자화상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작년에는 국운을 좌우했던 긴박한 시간도 순식간에 흘렀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아프고 행복했던 모든 일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아픈 상처도 단단하게 설계했던 계획들도 무뎌진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언젠가는 먼지처럼 사라질 우리들의 짧은 생이지만 하루하루가 보석 같은 삶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개인을 떠나서 지역이나 국가도 철저히 그리고 냉철한 시선으로 자화상을 그려보아야 한다. 역사를 읽지 못하고 끝없이 실수를 반복하는 민족은 앞날이 암담하다. 자신의 내면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표현된 자화상이 명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듣는 사람의 판단은 신뢰할 수 있다.

무술년 황금 개해인 2018년에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태평성대가 눈앞에 펼쳐지면 좋으련만 생각지도 않는 시련에 부딪칠 수도 있다. 혁명에 가까운 4차 산업의 시대에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빠르게 변모할 시기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자화상을 그려보아야 한다. 2018년 모두가 그린 자화상이 명작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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