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국밥집 옆 면허시험장

입력 2023.09.13. 14:02 수정 2023.09.14. 19:38 댓글 0개
유지호의 무등칼럼 디지털편집부 겸 뉴스룸센터장

1990년 대, 두암동에 자주가던 국밥집이 하나 있었다. 돼지 부산물을 넣고 끓인 장터 국밥이었다. 메뉴는 모듬·내장·머리·순대국밥. 잡내가 전혀 안 났다. 심장·위·새끼보 등 온갖 내장이 들었는데도 그랬다. 국물도 탁하지 않고 깔끔해서 좋았다. 유명한 창평 쪽 할머니에게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아랫쪽 운전면허시험장에 올 때마다 어김없이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갔다. 시험장을 찾던 여느 응시생들 처럼.

광주·전남에서 유일했던 '전남운전면허시험장'. 79년 문을 열었다. 운전연습을 면허시험장에서 하던 때였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에겐 1t트럭도 귀하던 시절. 실수가 잦았던 이유다. "OO번 탈락했습니다." "모자쓴 학생! 내려오세요." 코스시험 'T'·'S'자형이나 주행시험의 '언덕 오르기'에선 시동을 꺼뜨리기 일쑤였다. 떨어지면 곧바로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너덜너덜 해진 응시원서에 덕지덕지 붙은 수입인지들은 그 '훈장'들이었다.

전리품인 면허증은 어느덧 신분증이 됐다. 한국인으로 처음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이용문이다. 일본인과 합작해 '포드 T형' 승용차 2대로 시간제 임대업을 했던 서울 낙산의 부자 이봉래의 아들. 1914년 '자동차운전허가증'이 교부되던 때다. 지금처럼 사진이 붙은 운전면허증은 1919년부터 발행됐다. 100년이 훌쩍 지난 현재, 면허증은 모두 3천300만 명이 땄다. 그 새 운전은 '기술'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

'두암동'은 인기가 많았다. 전국에서 운전면허를 가장 쉽게 딸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다.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면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을 전후해서다. 악순환은 되풀이 됐다. 대기와 적체가 극심했다. 원서접수 후 시험을 치르는데까지 2∼3개월 걸렸다. 97년 전라남도 나주로 옮겨간 배경이다.

불편함의 시작이었다. 기능·도로주행은 시내 운전학원에서 대행하지만 학과시험은 반드시 시험장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삼각동 일대에 면허시험장이 다시 생긴다고 한다. 떠난 지 26년 만이다. 총 사업비 328억 원을 들여 연면적 4만210㎡ 규모로 건립한다는 거다. 11월 착공, 2025년 말 완공 예정이다. 2026년부턴 굳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는 의미다. 근처에 국밥집도 들어올까. 대학생 시절, 당구장 짜장면 처럼 면허시험장 옆 국밥 맛은 일품이었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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