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동행(同行)하면 동행(同幸)해요

입력 2018.01.03. 17:27 수정 2018.01.04. 08:23 댓글 0개
박석호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장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정국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파면 등 다사다난했던 정유년 한해가 저물고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국민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지난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새해 설계를 하고 소망도 빈다. 새해를 맞아 다들 새 희망을 품지만 우리 주변 곳곳에서는 소외된 이웃들이 넘치는 등 ‘격차 사회’가 지속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자체와 지자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과 개인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세대와 지역, 계층간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갈등과 반목은 계속될 것이다.

지방자치가 도입된지 20념이 넘었지만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식민지’와 다름 없다. 국가 재정의 80%를 거머쥐고 있는 중앙정부는 지방분권 시대를 맞았지만 지역에 권한과 재정을 넘겨주지 않고 있다. 곳간에 수조원을 쌓아 두고 있는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제대로 된 이익을 배분하지 않는다. 동반성장과 상생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 하다.

고기는 물이 있어야 숨을 쉬고, 씨앗은 흙을 만나야 싹이 튼다.

사람도 주변 사람이 있어야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가 상생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혼자만의 삶과 인생은 결코 없다. 결국 동행(同行)이 필요하다. 동행의 사전적 의미는 함께 행하는 것이고 같이 가는 것이다.

지방이 있어야 중앙도 있을 수 있고, 중소기업이 있어야 대기업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영어 단어로는 companionship이다. 친구라는 말이다. companionship은 원래 빵을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동행의 의미에는 ‘함께 먹는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동행은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지만 일부에만 그치고 있어 아쉽다.

개인 차원에서는 동행보다는 독행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동행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회도 여전히 상위 10%가 힘과 돈으로 하위 90%을 좌지우지 하고 빵을 나눠먹지도 않는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와 권력 양극화가 우리의 동행의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올해는 광주시와 전남도에게 남 다른 한해다. 지방분권 시대를 이끌 새로운 지방일꾼을 뽑고 전라도 정도 천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광주시와 전남도, 일선 지자체들은 에너지밸리 연구개발센터, 한전공대 유치, 광주군공항 이전 등 지역간 현안들에 대해 지역 소이기주의와 편가르기에 매몰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특히 .6·13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면서 각 지자체간 대립과 갈등, 반목은 확산될 조짐 마저 보이고 있다.  또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각종 공약과 정책으로 주민과의 동행을 떠벌리지만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정당과 기득권과의 동행만으로 끝난다.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이란 말 처럼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보여준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과 같은 반복과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한뿌리’인 광주와 전남에게 ‘독행’ 이 아닌 ‘동행’이 중요한 이유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가고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격차와 단절의 독행 사회에서 동행 사회로 가야 한다. 부자와 빈자의 동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동행,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행, 노동자와 사용자의 동행 ,여당과 야당의 동행,도시와 시골의 동행 등…이렇게 뚜벅뚜벅 가다보면 동행同行)은 동행(同幸 )이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간다면 서로 행복해질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 기대고 살아가는 동행의 길동무와 같다. 서로 배려하고 같이 도와주고 살아가면 세상은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무술년 새해. 우리 사회가 동행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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