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무등일보 신춘문예-소설]봉이

입력 2018.01.02. 11:45 수정 2018.01.02. 16:30 댓글 0개

봄 이

김 용 매

“바라바라밤 빰빰.”

학교 정문 문방구 앞 뽑기 통 음악 소리가 나를 부른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뽑기 통 앞에 꼬맹이들이 몰려있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문방구 앞을 맴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나는 배가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빵을 살까, 뽑기를 할까.

“비껴. 돈 없는 것들은 꺼져.”

나는 미니 장난감 뽑기 통 앞으로 다가간다. 꼬맹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어깨가 저절로 올라간다. 동전을 넣어 스위치를 내린다. 쿵, 소리와 함께 500원 동전 두 개 크기의 동그란 통이 나온다. 그 통 속에는 사탕도 있고, 구두도 있고, 총도 있고, 예쁜 핀도 있고, 책도 들어있다. 연애 책이 나오면 대박. 통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나는 뽑기로 그날의 재수를 봤다. 재수란 돈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이라고 했다. 같이 사는 꼰대 할마 씨가 아침마다 화투로 재수를 보면서 알려줬다. 할마 씨는 좋은 패가 나온 날이면 화장을 했다. 종이를 구겨놓은 것 같은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면 종이가 제법 반반하게 펴진 것처럼 되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나도 화장을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손에 물을 묻혀 머리에 발랐다. 세수도 안 하고 뭔 멋을 부린다고 그러냐 생긴 대로 살아라, 이 년아, 하면서 할마 씨는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아프리카파프리카ㅤㅇㅑㅍ,”

주문을 걸며 통을 비틀어 연다. 미니권총이다. 까만 플라스틱 몸통에 방아쇠는 커피색이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먹을 쥐어본다. 손안에 쏙 들어간다.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진짜 권총 같다. 미니권총을 손에 쥐고 아래를 향해서 한 발 쏜다. 피융, 입으로 쏘는 총소리에 꼬맹이들이 비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 짱이다. 미니권총을 바지 주머니 깊숙한 곳에 짱박았다. 자애쌤에게 들키면 쓰레기통으로 갈 것이다. 빈 통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는다. 빠지직, 소리가 음악 소리로 들린다.

엘사 가방과 세트인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교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태권도 학원. 보습학원. 영어 학원 이름표를 붙인 노란색 승합차에서 아이들이 내린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무료로 학교에 데려다 주는 차다. 나도 학원 차를 타보고 싶다.

나는 준수 오빠와 그의 여동생인 보연이랑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에 다닌다. 오빠는 우유같이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쌍까풀진 커다란 눈, 코끝이 뾰족하고 키가 커서 어디에 있더라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준수 오빠가 지나간다. 역시 오늘 나는 재수가 좋다. 잘 생기면 뭐 하냐 얼굴값도 못하는 새끼가 둘이나 되는데 지 에미 속도 이 할미처럼 문드러졌을 것이다, 라고 할마 씨가 구시렁댔다. 속이 진짜로 문드러졌는지 까 뒤집어보고 싶었다. 할마 씨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간혹 술 냄새도 났다. 속이 문드러져서 술을 마셨을까. 우리 꼰대도 그랬을까.

교문에 서서 학습 도움실 창문을 쳐다본다. 장애가 있거나 다문화 아이,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자애쌤과 공부하는 교실이다. 특수교육은 학교 공부가 아주 어려운 나 같은 아이들에게 또래보다 쉬운 공부를 가르쳐 주는 맞춤형 교육이다. 하루에 국어, 수학 두 시간 수업을 한다. 자애쌤이 차를 마시거나 칫솔질하면서 운동장을 내다볼지도 모른다.

도움실에서 하는 성교육 시간은 금방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다른 수업 시간들은 거미가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내는 것처럼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 성교육 시간에 남자 아기 씨와 여자 아기 씨가 만나서 아기가 생기는 과정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여줬다. 콩나물같이 생긴 남자 아기 씨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은 신기했다.

성교육이 끝나고 교실에서 사회 1단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리 지역이 자리 잡은 곳을 공부했다. 성교육 시간에 본 그림들이 머릿속에서 섬처럼 둥둥 떠다녔다. 담임쌤이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하라고 해서 손을 들었다.

“남자 아기씨와 여자 아기씨가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합니다.”

애들은 손으로 책상이 부서져라 두드리면서 깔깔거렸다. 담임쌤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조용해졌다. 수업과 관련 없는 질문하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나는 그 사건 때문에 ‘변태’라는 별명이 하나 추가되었다. 그래도 그다지 상관없었다. 잘 생긴 총각쌤이 당황하는 모습에서 은근슬쩍 재미있고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쯤 자애쌤은 무엇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창문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6학년 5반 교실에 가려면 도움실 옆의 출입구를 거쳐야 한다. 복잡한 것은 싫다. 무조건 전진이다. 친구들은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전교생이 학교에 오면 운동장 둘레를 열 바퀴 돌아야한다. 웃고 떠들면서 강강술래처럼 돌다가 교실로 들어간다. 나는 운동장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현관 앞으로 간다. 도움실 창문이 열려있다. 달팽이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덧신을 신는다.

“김봉, 운동했습니까?”

자애쌤이 떡 버티고 있다. 신발주머니를 뒤로 감춘다. 교실 옆 복도에 신발장이 있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닌다고 또 잔소리 할 것이다. 엘사 가방 세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신상품이다.

보연이가 자애쌤 뒤에서 나에게 혀를 날름 내보이고 계단을 올라간다. 저것이 죽을려고, 나는 속으로 주먹을 날린다.

자애쌤은 덩치가 산만큼 커서 나이 들어 보인다고, 도움실 엄마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오십 살 노처녀라니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화났을 때는 교실이 흔들렸다. 다리는 현장학습에서 본 동물원 코끼리 다리였다.

“네, 운동장 돌았어요.”

입에 발린 거짓말이다. 자애쌤의 눈이 성난 사자 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린다. 도움실에 끌려갈 만큼 잘못한 것은 없다.

“운동을 했다고? 도움실로 갑시다.”

“안 돼요, 교실에 가서 책 읽고 스티커 받아야 해요.”

얼굴을 찡그리며 우는소리를 낸다. 아침부터 도움실이라니. 잘 생긴 총각 담임쌤이 얼른 보고 싶다. 교실에 8시 30분까지 도착해서 자습시간에 책을 읽으면 칭찬 스티커 한 장을 줬다. 한 달에 한 번 스티커를 많이 모은 친구는 담임쌤과 사진을 찍었다. 학급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려서 전교생이 볼 수 있게 했다. 오늘은 분명히 재수 있는 날인데 이상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자애쌤을 본다. 얼굴이 빨간 풍선이다. 풍선이 터지기 전에 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실 밖에 있어서 내가 유리하다. 자애쌤은 엄마들이나 다른 쌤이 옆에 있으면 말랑말랑한 홍시 같았다. 목소리도 달콤했다. 그런 가면 쓴 모습을 볼 때면 내 손 발이 구운 오징어처럼 오글거렸다. 자애쌤은 아무도 없는 도움실에서는 떫은 땡감이 됐다. 로봇같이 딱딱한 목소리로 고함치거나 잔소리를 할 때면 귀를 막고 싶었다. 교감쌤이 나타난다. 나는 더 큰 소리로 우는 체한다.

“김봉, 왜 울지?”

교감쌤이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리려다가 주춤거린다. 머리카락이 납작 눌리고 기름기가 흐르는 머리에 손을 올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별명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 ‘뺀질이’라는 별명이 있다. 뺀질이는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와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아서 붙여졌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하고 싶어지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자애쌤이 도움실로 데려가려는 중이라고 말한다. 교감쌤은 나와 자애쌤을 잠시 쳐다보더니 큼큼거리며 지나간다. 나는 발을 통통 찍으며, 자애쌤 뒤를 천천히 뒤따라간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공책이나 먹을 것을 나눠주곤 했다. 나는 막대 사탕을 줄 때면 두세 번 달라고 졸랐다. 자애쌤에게 들키면 도움실로 끌려갔다. 한 개는 먹고 나머지는 비밀 주머니에 모아 놓았다.

아이들이 도움실에서 공부한다고 장애인이라고 놀리면 죽이고 싶었다. 담임쌤이 말하기를, 못 하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 너는 마음이 순수하고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로 된다고 용기를 줬다. 담임쌤이 없을 때는 아는 체도 하지 않다가 근방에 있으면 말도 걸고 시간표도 챙겨주면서 친한 체하는 아이들을 보면 재수 없었다. 이런 애들은 얌체였다.

도움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등 수업 방해를 심하게 하지 않으면 쌤들이나 친구들이 이해를 해줬다. 나는 친구들이 있는 교실을 좋아했다.

“김봉.”

자애쌤의 천둥소리에 교실이 흔들린다. 나는 턱을 내리고 어깨를 살짝 올린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턱 선을 가리는 얼짱 각도를 하고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올린다.

“김봉, 너 울지 않으면서 우는 체하는 거 나도 이젠 지겹다. 너라는 애는 진심이라는 게 있기는 합니까?”

자애쌤이 성난 사자로 변해 내 주위를 빙빙 돈다. 눈이 가느다란 한일자로 바뀐다. ‘침 소나기’가 쏟아질 증상이다. 지금은 수증기를 모으고 있을 것이다. 담임쌤이 수증기가 모여서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된다고 과학시간에 알려줬다. 그런다고 쫄게 될 김봉이 아니다. 능청을 떨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있는 미니권총을 만지작거린다.

눈송이가 날린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가 고프다. 하늘에서 솜사탕을 뿌려주는 것 같다. 이런 날 준수 오빠랑 데이트하면 폼이 날 텐데. 준수 오빠와 나는 같은 6학년이다. 오빠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장애가 있으면 초등학교에 늦게 입학해도 된다고 자애쌤이 그랬다.

“김봉, 어제 공부방에서 준수랑 뽀뽀했습니까?”

뽀뽀란 말이 소풍 간 정신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뽀뽀 안 했는데요.”

“정말, 볼이 빨개진 것을 보니 둘이 사귀니?”

띠로리, 쌤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큰소리 칠 때는 언제고 내 볼이 빨개진 이유도 모르다니 한심하다. 온풍기가 빵빵하게 돌아가는 따뜻한 교실에 들어가면 볼이 빨갛게 된다. 땀도 난다. 땀이 나면 발이 많은 벌레가 살갗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렵다.

우리 집은 옥탑방이다. 집구석은 내 입김으로 방안을 데울 정도로 차갑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코가 시리다. 냉장고에 갇혀 내가 얼음으로 변하는 꿈을 자주 꾼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면 영화 ‘겨울 왕국’의 엘사 공주가 되는 것을 상상한다. 나는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얼음으로 얼리는 능력을 감춘 채 얼음 성에 살고 있다. 하지만 준수 오빠가 구해주는 것을 상상하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 담임쌤이 구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은 담임쌤이 내 보호자다. 담임쌤은 내가 밥을 씹지 않고 꿀꺽 넘기면 천천히 먹어라,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땐 엄마 같았다. 빨리 먹어야지 급식을 더 먹을 수 있다. 점심으로 준비한 음식이 떨어지면 못 먹을 수도 있다. 밥 먹으러 학교 다닌다고 아이들이 놀렸다. 급식실 앞에서 줄을 설 때면 작은 몸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담임쌤 뒤에 1등으로 줄을 섰다.

“보연이가 뽀뽀하는 것 봤다고 했는데 거짓말 할 겁니까?”

메롱, 하고 지나갔던 보연이가 떠오른다. 배신자 같으니라고, 하긴 어린 것이 연애를 알기나 하겠어. 나 같은 열세 살이라면 모를까.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한쪽 다리를 달달 떤다. 손으로 미니권총을 만지작거린다.

“허준수 불러서 확인한다. 다리 떨지 말고 주머니에서 손 빼. 어디 선생님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리고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나는 할마 씨 흉내를 잘 냈다. 관절염이 있는 할마 씨처럼 한 쪽 무릎을 굽히지 않고 걸으면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에게 귀엽거나 불쌍하게 보이고 싶을 때는 양팔을 겨드랑이에 붙인 후 목도리도마뱀처럼 옆으로 몸을 흔들며 한쪽 무릎을 굽히지 않고 걸었다.

“뽀뽀 안 했다는 거 정말이에요. 뽀뽀가 아니라 키스했으니까요.”

“…….”

자애쌤의 빨간 풍선이 터지려고 한다. 한 방 먹여서 기분 짱이다. 자애쌤이 내 머리를 잡고 앞뒤로 흔든다. 떡처럼 뭉친 머리를 손으로 만지다니, 그래도 교감쌤에 비해 인간적으로 낫다.

교감쌤은 지켜보는 눈이 많을수록 나에게 유난히 친절했다. 운동회나 재능잔치를 할 때 엄마들이 가까이 있으면 미소 천사로 변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텔라가 되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느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자기 방으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건 가짜로 웃는 것이라고 엄마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처럼 교감쌤은 겉과 속이 달라서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언젠가 교감쌤 방 앞을 지나가다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인사를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새 학기가 되면 도움실에 새로운 장난감들이 등장했다. 도움실 앞문을 열면 칠판이 보였다. 칠판 위에 태극기가 우리를 내려다봤다. 교탁 옆으로 자애쌤 책상과 컴퓨터가 있었다. 운동장 쪽에 있는 학생용 컴퓨터가 있지만 가까이 할 수 없다. 자애쌤은 공부를 최고로 여기기 때문에 도움실 학생들이 컴퓨터 하는 것을 싫어했다. 도움실에서 공부를 하면 손이 아팠다. ‘우리 애들 서울대 보내려고 작정했소, 공부를 시켜도 어지간해야지’라고 할마 씨가 따진 적이 있었다. 할마 씨가 그런 말을 하다니 놀라웠다. 공부를 못 한다고 때리고, 안 한다고 때리고 매일 공부, 공부 ‘공’자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팠다. 나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어서 특수교육대상자로 공부 도움을 특별히 받고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공부하라는 것은 걷지도 못 하는 아기에게 달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니 꼰대들이 하는 일은 알쏭달쏭, 어지러웠다.

컴퓨터 옆 화분에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꽃을 보면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화분에 물을 주면 나도 쑥쑥 자라는 것 같았다. 나는 턱 밑에 손을 받치고 엄마 만나는 상상을 했다. 엄마를 만나면 막대 사탕을 줄 것이다. 얼른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싶다. 엄마와 살면서 꽃을 많이 심을 것이다.

뒤에 있는 게시판에 도움실 학생들 미술작품이 키 재기를 했다. 진열장에 빼곡한 장난감들이 놀자고 손짓했지만, 흥미를 끄는 시간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신상 레고 세트였다.

레고를 조립했다. 안방과 부엌, 거실이 있는 집을 만들었다. 마당에 나무도 심고 그네도 만들었다. 엄지손가락 절반 크기 레고 인형들은 팔다리가 접히고 손가락도 움직였다.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그네에 태웠다. 자애쌤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봤다. 모니터가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4교시 도움실 수업이 있으면 5교시 종 칠 때까지 도움실에 있어야 했다. 자애쌤은 나쁜 짓하면 경찰서 간다고 했는데 나는 도움실이 경찰서 같았다.

조용히 일어나서 실내화를 신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고양이 걸음으로 뒷문으로 걸어갔다.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김봉, 거기 서. 자애쌤 목소리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지남철에 달라붙어버린 것처럼 그 자리에 멈췄다. 자애쌤이 천천히 내 앞으로 왔다. 눈이 한일자로 가늘게 바뀌었다. 바지 속에 있는 것을 꺼내라고 했다. 나는 바지 속에 아무것도 없다고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자애쌤이 교실 문을 안에서 잠갔다. 복도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갔다. 내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 나는 양손으로 바지 허리춤을 꽉 잡았다. 자애쌤 힘을 당할 수 없었다. 바지가 엉거주춤 무릎 위에 걸쳐졌다. 자애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얼른 팬티 허리춤을 꽉 잡았다. 내 입이 한일자가 됐다. 자애쌤이 뒤에서 내 팬티를 기습적으로 내렸다. 내가 팬티를 꽉 잡고 있었지만 자애쌤에게 또 지고 말았다. 학교에서 기습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스케키, 하면서 남학생들이 여자애들 치마를 들추곤 했다. 나는 그런 창피를 당한 적이 없었다. 내가 적군도 아닐 텐데 기습해서 팬티를 내리다니, 자애쌤이야말로 진정한 변태였다. 자애쌤이 악, 소리를 질러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팬티 속에서 얼굴을 가린 레고 남자 인형이 나왔다.

할마 씨가 도움실로 불려왔다. 봉이가 스티커도 훔치고, 앵그리버드 인형도 훔치고, 장난감도 교실에서 훔쳤다고, 자애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읊었다. 도움실에서 도둑질을 했으니 경찰서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침 소나기’를 뿌렸다. 할마 씨는 애들이 크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우리 꽃봉오리 낯 깎여서 경찰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우산을 쫙 펼쳤다. 자애쌤 얼굴이 우글쭈글 일그러졌다. 대박. 자애쌤 얼굴 색깔이 변했다. 살찐 카멜레온이 당황하는 모습 같았다. ‘목욕을 자주 시키고 옷을 청결하게 하라고’ 자애쌤이 목소리를 꾹꾹 눌러서 말했다. 할마 씨는 먹이는 것도 시원찮은데 기름기 빠져서 안 된다며 목욕탕은 한 달에 한 번 보내겠고 했다. 또 옛날에는 일 년 중에 명절날 두 번만 목욕해도 잘 살았다고 장풍을 날렸다. 자애쌤이 손부채로 얼굴에 바람을 날리며 한숨 쉬었다.

꼰대들이 다 그렇지, 뭐. 내가 진짜 도둑질 했나 확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잊어버린 것도 내 핑계를 대는데 그대로 믿는 것일까. 담임쌤은 달랐다. 함부로 친구를 의심하지 말고 각자 자기 물건 관리를 잘하라고 했다.

“김봉, 허준수가 뽀뽀했을 때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헐, 어떠하긴, 그걸 꼭 말로 표현해야 하나 한심하다. 자애쌤이 노처녀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나이가 되도록 시집을 못 갔지. 그렇게 궁금하면 교감쌤이랑 뽀뽀를 한 번 해 보던가.

“기분 나빴고요, 음 – 준수 오빠가 늑대 아저씨 같았어요.”

자애쌤이 야릇한 표정으로 웃는다. 엉큼하게, 무얼 상상하는 것일까. 나도 입으로만 웃어준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거나 소리를 크게 지릅니다. 알겠죠?”

“네. 네.”

영혼 없는 대답을 한다. 불쌍해서 팍팍 인심 쓴 거다. 남자에게 잡히면 바로 뿌리치고 도망가라니.

나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콧소리를 내면서 웃어줬다. 봉이야 안녕, 이라든지 눈인사라도 하지 않으면 쫓아가서 얼굴을 디밀고 큰 소리로 다시 인사를 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자애쌤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체하거나 특히 남자가 말을 걸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자애쌤이 나를 봤다면 폭풍 잔소리가 몰려와서 ‘소나기 침’으로 목욕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기분 짱이다. 이럴 때는 배도 안 고프다. 남자들이 인사를 받아주면 배가 부른 느낌이다. 나는 늘 배가 고프다.

아이에게 밥을 굶기고 추운 날씨에 옷도 입히지 않고 머리에 락스를 뿌리고 죽였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언제 오냐고 할마 씨에게 물어봤다가 공부나 하라고 군밤을 맞았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엄마를 찾냐, 나 같은 천사를 만나 부족한 것이 없을 거라며 큰소리쳤다. 정말 밥맛이었다. 꼰대가 엄마와 나를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재주가 메주라더니. 우리는 장애인이 되어 나라에서 돈을 탔다. 내가 어리다는 핑계로, 후원자까지 있는데 할마 씨는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우리 식구는 국가에서 먹여 살리니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할마 씨가 말했다. 그런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교에서 원고지를 준비해오라고 하던 날이었다. 할마 씨는 늦은 밤에 담임쌤에게 전화해 학교에서 원고지도 안 주는 법이 어디 있냐고 따졌다.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저녁은 공부방에서 먹고 오라고 말했던 할마 씨가 무슨 말라비틀어진 천사란 말인가. 내 뱃속에는 거지 천사가 들었는지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팠다. 학교 급식과 공부방 밥을 먹었어도 집에 돌아오면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나곤 했다.

할마 씨는 나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년이라고 욕을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다. 애비를 신고한 인정머리 없는 년이라는 거였다. 꼰대가 기분이 나쁘면 때리는데 내가 통통통, 치는 북도 아니고, 나는 맞기 싫었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폭력이라고 담임쌤이 말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꼰대들 마음 꼴리는 대로다.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 꽃봉오리가 우리 집 보배요.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소. 책상에 꿀이 붙었는지 책상에 머리를 항상 처박고 살거든. 내가 저 꽃봉오리 덕에 산다니까요, 할마 씨가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나 후원자가 오면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말이었다. 젠장, 때리지나 말든지. 우리 꼰대도 그런 식이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이었다. 그 수업은 강당과 운동장에서 번갈아가며 했다. 나는 학교에 가면서 세수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시간표를 챙길 내가 아니다. 매일 똑같은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강당에서 하는 수업인 줄 몰랐다. 매트리스 위에 덧신을 벗고 올라서야 했다. 엄지발가락이 양말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며칠 째 양말을 계속 신어서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났던 것이다. 쪽팔려서 애들이 볼까 봐 두리번거렸다. 다행이 본 애는 없었다. 두 발을 포개고 서있었다. 담임쌤이 두 발을 포개고 서 있으면 넘어질 수 있다고 똑바로 서라고 했다. 듣지 못한 체하며 몸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담임쌤이 수업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들이 아까운 체육시간을 뺏는다고 아우성이었다. 째려보는 아이, 눈을 왕방울처럼 뜨고 주먹을 날리는 아이, 입 모양으로 욕하는 아이, 담임쌤이 없을 때 맞아죽게 생겼다. 할 수 없이 포개진 발을 떼었다. 아이들이 삐져나온 엄지발가락을 보더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강당에 웃음 폭탄이 터졌다. 그 후, ‘빵구 뽕’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 다른 놈이 방구를 뀌고도 김봉이 했다고 우겨서 ‘방구 뽕’도 추가되었다. 여기도 뽕, 저기도 뽕, 뽕뽕투성이었다.

담임쌤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떨어지는 종이만 봐도 웃는 남자 애들이 낄낄대며 고추를 잡고 장난을 쳤다. 쌤들의 눈을 피해서. 나보고 변태라더니 하여튼 남자애들이 더 문제였다. 저것들은 분명 개념을 밥 말아먹었을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담임쌤은 이번 체육시간에는 2인 1조 발 묶어 뛰기 놀이를 한다고 했다. 두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수건에 서로 한 발씩 묶어서 뛰는 게임이었다. 한 명도 남는 사람이 없으면 짜장면을 쏜다고 했다. 애들의 함성에 강당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틈날 때마다 매질하는 우리 꼰대가 미웠다. ‘우리 꼰대’는 아빠의 또 다른 이름이다. 꼰대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를 때렸다. 입술에다 참기름을 바르고 말하는 것이 싫다. 옷으로 감춰진 내 피부에는 멍 자국이 추상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꽃봉오리는커녕 나는 꼰대의 봉이었다. 아니 우리 집 봉이었다.

술 사오란 말이야, 꼰대와 엄마랑 살 때 많이 듣던 소리였다. 꼰대는 물먹듯 술을 마시며 엄마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집구석은 술 냄새와 비릿하고 요상한 냄새로 절어있었다. 엄마가 돈이 없다고 하거나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하면 꼰대가 입을 다물고 동작을 멈췄다. 엄마와 나는 숨을 멈추고 오들오들 떨었다. 곧이어 꼰대가 벽이나 장롱을 힘껏 쳤다. 폭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손에 잡히는 것마다 부서지고, 엄마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렸다. 특히 머리를 많이 때렸다. 엄마는 꼰대가 때리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기만 했다. 꼰대가 나도 때렸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를 가슴에 안아주며 머리만큼은 보호해줬다. 엄마는 음식을 토하다가 요양원으로 갔다.

내가 꼰대 장난감 인형이 됐다. 얼굴과 몸은 울긋불긋 ‘멍꽃’이 피고 졌다. 꼰대가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물어보면 놀다가 다쳤다고 대답하라고 시켰다. 나는 꼰대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꼰대가 나를 때리려고 다가올 때면 ‘티라노사우르스’라는 공룡 같았다. 담임쌤이 가르쳐주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폭군 도마뱀’이며 가장 사납다고 했다. 아는 것도 많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어서 쌤들 중에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다. 워낙 잘 생긴 총각쌤이기도 하니까. 나는 겁에 질린 채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다가 코를 맞았다. 내 코가 피노키오 코처럼 커져갔다. 꼰대가 병원에 데려가면서 쓸데없는 데다 돈 쓰게 되었다며 짜증냈다. 의사가 다친 이유를 묻자, 애들 끼리 놀다 다쳤다고 꼰대가 얼버무렸다. 쳇, 내가 겉절이도 아닌데 얼버무릴 것이 따로 있지.

엄마는 김치 겉절이를 잘 담갔다. 꼰대 모르게 숨겨놓은 돈으로 겉절이를 만들어줬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만든 겉절이 반찬에 밥을 먹으면 배고프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엄마가 보고 싶다.

나는 아빠가 술 먹고 때렸다고 신고했던 적이 있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다. 마침내 아빠는 알코올 중독 시설에 끌려갔다. 내 근처에 올 수 없게 됐다. 나는 그 이후로 담임쌤을 유일한 보호자로 여기게 되었다.

준수오빠가 도움실로 불려온다. 얼굴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서 잔 표시다. 도움실에서도 잠을 자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잠을 자게 되면 자애쌤이 머리카락을 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자애쌤은 오로지 공부만 중요시했다. 사람은 손이 없어도 다리가 없어도 혼자 살 수 있으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혼자 살 수 없다고 했다. 오빠에게 교실에서 잠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졸리면 눈을 반만 뜨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생각하거나, 먹을 것이나 공부방에서 할 놀이를 상상하라고 그랬다. 만약에 눈을 감게 되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살짝 거짓말을 했는데, 오빠에게 그러다가 죽을 수 있다고 확실히 알려주어야겠다.

“허준수, 김봉하고 공부방에서 뭐 했습니까? 선생님이 다 알고 있으니까 사실대로 말 하세요.”

“네, 김봉이 뽀뽀하자고 해서 했는데요.”

“내가 안 했거든. 오빠 니가 고추를 내 다리 사이에 넣었잖아.”

자애쌤은 아빠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것처럼 커다란 몸을 후들거리더니 의자에 주저앉는다. 의자가 신음을 질러댄다. 혹시 부서졌나 살펴보니 다행히도 괜찮다.

“……내가 언제.”

준수 오빠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본다. 자애쌤이 양손을 머리에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번에 되게 큰 거 한방 먹였다. 웃음을 참느라고 자칫 방귀를 뀔 뻔해서 엉덩이에 힘을 준다.

“오빠야, 니가 공부방 화장실에서 안 했냐?”

“난 안 했는데.”

준수 오빠는 나와 자애쌤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자애쌤의 세모눈이 노려본다. 코브라 같다. 독이빨로 물어죽일 기세다. 준수 오빠의 검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다. 얼굴을 실룩이더니 울음을 터트린다.

“시끄러워, 너희들 둘 다 조용히 해.”

자애쌤이 드디어 제대로 된 정신 줄을 잡은 것 같다.

“허준수,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김봉과 뽀뽀만 했습니까?”

준수 오빠는 훌쩍이며 머리를 아래위로 움직인다. 순진한 허준수, 너는 쓸만해. 내 꿈은 하루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준수 오빠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말이라니까요.”

나는 눈꼬리를 내리고 울먹이는 체한다.

“너희들 안 되겠다. 김봉, 어제 공부방에서 한 것 그대로 해보세요. 시시티브이에 찍혀 있을 테니까 거짓말 할 생각하지 말고.”

자애쌤이 나를 위아래로 노려본다. 시시티브이가 있다면 직접 확인해보고 꾸짖으면 되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 난리를 피울까. 변태도 아니고, 나보고 그대로 다시 해보라니 말도 안 된다. 누굴 바보로 아나. 내가 어리다고 하지만 모르는 거 빼고 알 건 다 안다. 불만이 커지면서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의 미니권총을 만지작거린다.

내 앞에 헝겊으로 만든 남자인형과 여자인형이 있다. 준수 오빠 얼굴을 바라본다. 잘생긴 얼굴에 표정이 없으니 인형 같다. 남자인형이 오빠였으면 좋겠다. 남자인형과 여자인형을 마주 보게 눕힌다. 다리를 꽈배기처럼 꼬아준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 때 나는 자주 봤다. 꼰대가 술에 취해서 엄마를 때리고 난 후에 엄마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꼰대는 잘못했다고 하면서 엄마를 알몸으로 눕혔다. 엄마가 울면서 발버둥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가 죽을까 봐 겁이 났다. 잠든 체하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에서 깨니까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밤새 엄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일까. 어젯밤에 찡그렸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어른들은 같이 잠을 자면 잘못했어도 용서가 되는 걸까.

자애쌤이 교감쌤에게 전화를 한다. 잠시 후에 교감쌤이 들어온다. 툭 하면 수업시간에도 나타나서 새로울 것도 없다. 자애쌤은 나와 준수 오빠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쌤들이 급한 일이 있을 때면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문제집을 주면서 풀어보라고 했다. 특히 학기말에는 영화 감상으로 시간을 때우게 만들었다. ‘겨울 왕국’은 다 외웠다. 밤마다 나는 엘사 공주가 되었다. 쌤들은 학기말이 되면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수업을 좋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교감쌤과 자애쌤이 한참을 소곤거린다.

“내가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길까 봐 학생들 잘 보라고 했지 않소. 교직 생활 삼십 년에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지 알 수가 없네. 무사히 정년이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소.”

“죄송합니다. 하교 후에 일어난 일이라서 저희 책임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교감쌤 목소리가 커진다. 자애쌤이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인다. 그럼 그렇지, 꼰대들이 언제 우리를 책임졌냐. 귀찮은 혹으로 취급했지.

교감쌤의 양쪽 입 꼬리가 축 쳐져 불도그 같다. 성깔 있는 눈으로 나를 앙칼지게 쳐다본다. 이번에는 교감쌤이 다그칠 차례다. 웃음을 참느라 입이 아프고 눈물이 나온다. 슬프게 보이는 표정으로 눈물을 닦는다. 준수 오빠를 훔쳐본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교감쌤의 두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교감쌤 한숨 소리에 도움실이 날아갈 것 같다. 교감쌤이 팔짱을 끼고 내 주위를 빙빙 돈다. 희한하다. 애들은 운동장을 돌고 꼰대들은 교실에서 돈다. 미니권총을 너무 만지작거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

“공부방 원장에게 확인해보세요.”

교감쌤이 자애쌤에게 지시한다. 자애쌤이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통화한다. 자애쌤 얼굴에 ‘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잠시 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공부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데요.”

그러면 그렇지. 역시 꼰대들은 거짓말 선수들이다. 원장쌤이 사실대로 말하면 공부방 문 닫아야 한다. 결국 쪽박 차게 될 것이다. 원장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나도 짚을 수 있다. 꼰대들은 서로 속이고 속는다. 원장쌤과 우리는 한 배를 탄 식구다.

공부방에선, 공부를 하든지 놀든지 자유였다. 공부방에서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사랑은 채워주지 못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내 뱃속에서는 자나 깨나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큭-큭큭”

내 이빨 사이로 웃음이 삐져나오다가 빵, 터진다. 한 번 터진 웃음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멈춘다. 교실에서 멍 때리고 있는 것보다 재미있고 후련하다. 나는 자애쌤과 교감쌤에게 크게 한 방 먹인 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지? 학교 급식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내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리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내 미니권총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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