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부르스(blues)

입력 2017.12.25. 14:29 수정 2017.12.25. 16:33 댓글 0개

부르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다. 셀 수 없이 많은 ‘부르스’라는 이름의 곡들이 서민의 귀를 적시고 마음을 울렸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하는 대전 부르스가 대표적이다. 1956년 안정애가 처음 발표해 크게 히트시켰다. 그 뒤 1980년 조용필이 새롭게 취입했으며 이어 장사익 등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대전에서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가 중심 소재다.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이 가사는 너무도 유명해 ‘대전부르스’ 대신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1963년에 만들어진 영화 제목도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었다.

‘사랑이 피어나는 영동의 밤거리’로 시작하는 나훈아의 ‘영동 부르스’도 널리 알려진 노래다 ‘오색등 네온불이 속삭이듯 나를 유혹하는 밤’으로 시작하는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도 큰 인기를 얻었다. 주현미는 ‘신사동 부르스’ ‘영동 부르스’ 등 일련의 ‘부르스 시리즈’를 불러 유명세를 탔다. 1965년에 발표된 황금심의 ‘눈물의 부르스’도 있다. ‘눈물 흘리면서 걸어갑니다 고요한 밤거리를 걸어갑니다’로 시작해 ‘바람아 불지마라 너마저 울려 준다면 허무한 인생살이 눈물의 부르스여’로 끝난다.

광복 이전인  1941년 ‘선창의 부르스’를 시작으로 광복 이후에도 옥두옥이 부른 ‘청춘 부르스’, 1955년 백설희가 부른 ‘무정 부르스’를 비롯해 1960년 ‘소공동 부르스’, 1969년 ‘사나이 부르스’, 등 ‘~부르스’라는 제목의 곡들이 잇따라 나왔다. 우리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일본풍’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스라고 부르는 이 음악은 본디 1890년대 미국 흑인들의 영가, 노동요, 거리의 외침이 모여서 이루어진 성악 음악의 유형으로 시작된 블루스(blues)에서 왔다고 한다. 재즈(jazz)의 기반이 된, 두 박자 또는 네 박자의 애조를 띤 악곡 형식이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부르던 노동요나 필드 홀러(field holler)라는 선창과 후창으로 구성된 합창요가 그 기원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고단한 노예생활의 비참함을 달래려 슬픈 곡조만을 사용하였고, ‘우울하다’ 또는 ‘슬프다’는 뜻의 ‘블루(blue)’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현대에 오면서 다양하게 확대됐다.

음악사적인 부분을 차치하면 부르스가 됐건, 블루스가 됐건, 본령은 고독하고 괴롭고 슬픈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게 제대로 발현됐을 때는 아픔을 치유하는 위로의 노래가 되기도 하고 곽재구의 ‘대인동 부르스’같은 가슴 시린 시(詩)가 되기도 하지만, 잘못 됐을 땐 ‘난리부르스’가 되기도 한다. 정치판이 똑 그렇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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