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운조루가의 ‘타인능해’

입력 2017.12.19. 09:27 수정 2017.12.19. 09:36 댓글 0개

운조루(雲鳥樓)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고택이다. 조선 영조 52년인 1776년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지은 집이다. ‘금가락지가 떨어졌다’는 명당 ‘금환락지(金環落地)’ 터에 자리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가다.

규모, 터, 건축양식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운조루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택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운조루가 더 유명세를 타는 까닭은 따로 있다. 그 고택 속에 깃든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타인능해(他人能解). 이 집 곳간채 앞에 오래된 쌀 뒤주가 하나 놓여 있다. 이 뒤주에 새겨진 글씨가 ‘타인능해’다. ‘누구나 열 수 있다.’ 마을의 배고픈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라도 와서 뒤주를 열어 필요한 만큼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뒤주가 재물을 ?耉틂醮?치부의 수단이 아닌 가진 걸 나누는 나눔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집주인의 배려는 뒤주의 위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집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아둬 안그래도 불편했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통나무를 깍아 만든 이 뒤주에는 두가마니 닷되의 쌀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집주인은 한달에 한번씩 뒤주가 비워지면 쌀을 다시 채울 것을 명했는데, 이렇게 나눠진 쌀이 매년 30여 가마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조루가의 배려는 채 1m가 안되는 굴뚝 높이에서도 드러난다. 밥 짓는 연기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만 하다. 시대를 넘어 운조루가가 칭송받는 이유다.

연말 연시 광주·전남 곳곳에서 제2, 제3의 ‘타인능해 쌀 뒤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초 순천에 있는 한 제강회사가 순천시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1억원을 쾌척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이 금액을 기탁해 오고 있다. 여수 출신 한 출향기업인도 해마다 3억원대 성금을 고향 여수를 위해 내놓고 있는가 하면 장흥의 한 이불업체 대표도 지난 13일 1천만원 상당의 이불 100채를 장흥군에 기탁해왔다. 이 대표의 이불 기탁은 1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내 것을 선뜻 내놓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부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기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와 전남 모두 전년 같은기간 보다 모금액이 늘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나눠도 나눠도 부족한 게 나눔이고, 배려하고 배려해도 넘치지 않는 게 배려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세밑은 늘 가혹한 법이다. 나눔과 배려가 더욱 절실한 까닭이다. 제 4, 제5의 ‘타인능해 쌀 뒤주’가 기다려진다.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ysh68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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